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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붉은 통곡, 애도하는 입회인

by 설희

해가 지고 밤이 됐는데도 여전히 공기는 덥고 습했다. 에어컨 환풍구의 더운 바람은 물론이고 네온사인의 열기조차 예민하게 받아들일 것만 같아서, 김동진은 슬그머니 옆 골목으로 빠졌다.

 

“아, 너무 어두워졌잖아.”

 

그의 귀갓길은 좀 으슥한 골목이다. 한 블록만 넘어가면 네온사인으로 눈이 아플 지경인 번화가가 나와 네온사인의 빛이 골목 사이로 새어 들어와 아주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 덕에 오래된 탓에 스마트폰 손전등 만도 못한 가로등 불빛을 그냥저냥 넘어가게 했다.

 

“흑, 흑흑흑…….”

 

가로등 두 개 정도의 거리에 어떤 여자가 웅크린 채 양손에 고개를 묻고 울고 있었다. 희미하다고 해도 빛을 받아서 그런지 머리카락이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또 여자는 어디서 구한 것인지 감이 안 오는, 시내 백화점에서도 안 팔 것 같은 진한 녹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취객인가, 이 인적 드문 골목에 여자 혼자 있으면 위험할 텐데. 란 생각이 들기도 전에 동진은 여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아주 조금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고 충동적으로,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발이 그 여자에게 묶여버린 것 같기도 했다.

 

“저기요, 괜찮아요? 무슨 일 있……”

 

동진이 여자의 어깨에 손을 짚고 약간 힘을 주어 흔들자, 여자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이 울고 있는 여자에게 내리쬐었다.

 

여자의 피부는 약간 회색빛이 감돌 정도로 창백하고 핏기 하나 없었지만 동시에 피부 자체가 무척 단단해 보였고, 얼마나 울어댄 건지 단단하다고 느낀 피부와는 달리 눈가는 붉게 짓물러지고 흰자위는 붉은 실핏줄이 불거져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에 쓰기엔 부적절한 것 같지만, 여자의 홍채는 피부와 마찬가지로 창백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옅은 회색이었다. 그때, 크고 둥그렇던 동공이 빛을 받아 줄어들어……

 

“으아아아아아아악!!!!!”

 

“시끄러워.”

 

여자는 소리를 지르는 동진의 입을 한 손으로 꽉 틀어막았다. 여자는 동진보다 키가 크긴 했지만, 다른 여자보다 훨씬 힘이 세서 반항하지도 못했다. 여자는 다른 손으로 동진을 들어 올리고 등을 받쳤다. 틀어막은 손의 엄지손톱으로 그의 목을 그었고, 그대로 고개를 파묻었다. 막힌 비명과 숨소리와 입으로 빨아들이는 소리가 두 사람 곁으로 생생하게 들렸다.

 

“더는…… 못 먹겠어…….”

 

여자는 고개를 들고 동진의 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동진은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쓰러졌다. 여자는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으며 입가를 손으로 훔쳤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의 눈동자에는, 가로로 길쭉한 검은 직사각형의 무언가가 한가운데에 자리해 있었다.

 

골목 너머로 비명을 듣고 달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여자는 빠른 속도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이 쓰러진 동진은 발견했지만, 여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발굽 소리 같은 거 들리지 않았어?”

 

남들보다 귀가 좀 밝은 편이었던 사람의 말은 헛소리로 치부되어 묻혔지만 말이다.

 

 

 

별빛 초등학교 5학년 3반 마지막 교시, 과학 수업이 한창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슬라이드 쇼와 병행하며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동공’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홍채 안쪽 중앙에는 비어있는 공간이 있는데, 이를 동공이라 한단다. 그리고 우리 눈은 동공의 크기로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결정하지. 밝으면 눈이 부시니까 동공을 줄이고, 어두우면 어떻게든 앞을 보려고 동공을 크게 늘이지.”

 

리모컨을 툭툭 건드리자 다음 슬라이드 쇼가 나왔고, 고양이와 염소가 나오고, 한 번 더 리모컨을 건드리자 고양이의 동공을 찍은 사진이 나왔다. 세로로 길고 가늘게 쭉 뻗은 모양새였다. 담임 선생님이 한 번 더 리모컨을 건드리려는 순간……

 

딩 동 댕 동~ 하고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렸다. 담임 선생님은 수업 내용이 조금 더 남았다는 것에 한숨을 잠시 쉬다가 조례를 하려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자, 조례하자.”

 

담임 선생님은 비어있는 몇몇 남학생의 책걸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진이까지 냉방병으로 결석이라니. 너희들, 요새 냉방병이 기승인 거 알지? 그러니까 다들 여름이라고 에어컨이나 선풍기 너무 세게 틀지 말아라. 알았지?”

 

“네~”

 

“그럼 이상. 반장.”

 

“네, 차렷. 선생님께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하리는 가방을 챙기며 결석한 동진이를 걱정하는 듯 운을 띄웠다.

 

“동진이도 결석이라니 냉방병이 진짜 심한가 봐. 김동진 그 전교 1등이 학교를 다 결석하네.”

 

“좀 이상하지 않냐?”

 

“또 뭐가.”

 

“남자애들만 냉방병에 걸리고 있잖아. 우리 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반 애들까지! 게다가 딴 반 애들이 그러는데, 결석한 애들은 모두 목에 손톱으로 긁힌 것 같은 상처가 나 있었다는 거야! 봐봐, 딱 봐도 이상하지?”

 

“네가 이상하다, 네가. 어휴.”

 

하리는 현우를 한심하다는 듯 보면서 머리를 붙잡고 아래로 꾹꾹 눌러댔고, 가방을 챙기고 하교하기 위해 교문 밖으로 나섰다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춰 세우고 뒤를 돌아봤다. 가은이가 자기와 같이 가다 말고 어딘가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가은아. 거기 뭐 있어?”

 

하리가 몸을 죽 빼면서 가은이의 뒤를 보려 하자 만류하며 얼버무렸다. 하리 역시 가은이 뒤로 철조망과 그 뒤의 숲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응, 그냥 기분 탓인가 봐.”

 

가은은 분명 방금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었다. 그냥 착각이 빌며 친구들과 함께 하교했다. 탕, 하고 교차로 엮인 철창이 무언가에 움켜쥐어져 흔들리는 쇳소리와 사사삭, 하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학교가 산 근처에 있는 만큼 야생 동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피곤했다. 잠시 배를 채우는 것 외에는 밤낮을 쉬지 않고 걷고 또 달린 탓인가. 아주 먼 길을 왔지만, 인간들이 사는 곳은 크게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예감이 이곳까지 발을 옮기게 했지만 대책은 없었다. 지나온 길도 기억나지 않는 탓에 돌아가는 것도 할 수 없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날은 점점 더 저물어가고 있어서, 우선 폐창고에 쉬기로 했다.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슬픔 속에서 통곡 하다 보니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요정이란 관심이 없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일부러 기억하려 애쓰지 않기에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존재. 그래서 기억해내는 것이 더 힘든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요정에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오랜 세월과 온 몸을 장악해버린 슬픔 탓에 엷어지고 애매해져 버렸지만. 그러나 불합리하게도 고통 만은 잊히지 않기에, 그리고 가장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최근이 가장 고통스럽기 때문에 어떻게든 가장 오랜, 옛 기억의 시작부터 천천히 회고해나가며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니 이유를 찾아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피로에 전 몸이 옛일을 떠올리게 한다. 아주 오래 전, 마지막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 속의 마지막 왕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끝으로 아발론, 요정향으로 가는 길은 닫혀가고 있었다. 요정들 역시 나룻배를 따라 행진했다. 그러나 모든 요정들이 그 행렬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를 따라오지 않을 거니?”

 

“응. 당연하잖아? 나라 같은 애들만 사는 낙원이라니.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아.”

 

“그래? 흠…… 언제든 돌아오고 싶으면 와.”

 

오베론은 제 곁을 떠나는 요정들을 딱히 붙잡지는 않았다. 다만 떠나는 자에게 사과 씨앗을 하나 씩 건네주었다.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언제든 요정향으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른바 고향 행 티켓인 셈이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씨앗을 받은 요정, 붉고 구불거리는 머리칼과 들풀을 돌로 짓이겨 으깨서 낸 것같이 진한 녹색 드레스를 입고, 염소의 발굽을 한 흡혈 요정은 캄란 언덕 위로 올라갔다.

 

수습되지 못한 시체를 발굽으로 툭툭 건드리다가, 이내 무시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팔을 벌려 바람을 한껏 맞았다. 자유의 바람이었고, 피 바람의 잔재였고, 앞으로도 계속 불어올 미래였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것이 개운해서, 기대되어서, 설레어서 실컷 웃었다. 다시는 이렇게 웃지 못할 정도로. 이때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웃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먼 미래의 일까지 내다보며 적중해버렸지만.

 

요정은 어느 날 거대한 물웅덩이를 보았다. 깊이와 넓이를 당장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드넓고 깊숙한 그것은 ’바다’라고 했다. 저 너머로 또 다른 땅이 있다고 하자 요정은 배 한 척에 몰래 숨어들었다. 그렇게 요정은 요정향이라는 고향 뿐만 아니라 뛰놀며 돌아다니던 고장 역시 떠났다.

 

그렇게 섬을 떠나 대륙으로 가버린 지 한 천 년 쯤 흘렀다.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왕이 준 사과 씨앗은 어제 빼낸 것처럼 생기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요정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낙원으로 가지 않아도 요정의 삶은 즐거웠고, 그만큼 많은 것을 보았다.

 

요정의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땅인데, 인간들에게는 국경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늘과 땅만 보면 국경이니 뭐니 다 의미 없어 보이긴 했는데, 인간들을 관찰해 보면 의미가 있기는 했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 입고 있는 옷, 짓고 있는 건물 같은 것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같은 장소에서 인간들과 그들의 것이 달라지긴 했으나 그건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니 나라니 인간의 모습이 달라져도 사냥하고 취한 것들의 맛은 다 대동소이했기에 요정은 그 달라진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기억에도 담아두지 않았다. 인간은 재미있는 것. 자신이 가지고 놀고 즐길 수 있는 것. 이 세계가 지루하지 않게 끊임없이 짧은 생명을 남기고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 천 년 동안 섬과 대륙을 아우르며 떠돌아다니던 요정이 결론지은 ‘인간’이란 종의 뜻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떠돌아다니던 요정은 한 소녀를 보았다. 금발에, 자그맣고, 누구보다도 약해빠진 어린 인간이었다. 게다가 사냥 대상도 아닌 여자였다. 요정의 눈길을 끌 요소는 전혀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

 

그 아이는 느닷없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다. 단지 그 뿐인,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사말이었지만 요정에게는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그 오랜 세월 속에서, 이전에도 없었던, 존재하지 않았던 말 한마디. 그래서 답지 않게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얼빠진 말을 해버렸다.

 

“방금 그 인사, 나한테 한 거야?”

 

“? 네. 그럼 누구에게 하나요?”

 

자신에게 인사를 해준 아이에게 다가가 다시 물었다. 그 아이는 다가오는 요정을 피하지도 않고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

 

“멀리 있었는데도 되게 예쁘고 반짝거리는 언니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눈도 정말 예뻐요. 언니 같은 눈은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예전에 봤던 염소 같아.”

 

“염소? 아, 그러고 보니 인간들은 동공이 둥글지. 깜빡하고 있었네. 눈썰미가 좋은 아이구나.”

 

염소의 하반신을 가진 요정이라서 그런지, 요정의 눈동자 역시 염소처럼 가로줄 모양의 동공을 지닌 형태였다. 이를 단 번에 알아채는 눈썰미에 요정은 또다시 당황했다. 시간은 낮이었고, 햇빛이 둘을 향해 드리워지고 있었다.

 

염소의 하반신과 염소의 동공. 이런 점 때문에 괴물 취급받고(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은 맞지만, 괴물이라고 폄하 당하는 것은 싫었다) 괴롭힘 받던 때도 여럿이었다. 주로 불꽃으로…… 하필 능력이 사라지는 낮에 벌어지는 일이라 따돌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밤에 보복하고 회복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 일이 한 두 번 있던 일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 아이는 그런 혐오감도, 두려움도 내비치지 않았다. 소리를 질러 어른을 모으지도 않았다. 어째서일까? 그냥 겁이 없는, 순진해 빠진 어린 아이에 불과한 걸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이었지만.

 

“짠. 후후훗. 이러면 보통 사이즈 동공이지?”

 

요정은 양손으로 눈에다가 그림자를 드리웠다(인간들이 눈부신 햇빛을 가리는 행위와 유사했다). 그 말대로, 가로로 길쭉한 동공은 점점 중앙이 커지더니 보통 인간과 다를 것 없는 크고 둥근 동공이 되었다. 다시 손을 샥 빼고 동공도 좁아졌지만, 아이는 흥미롭다는 듯 도망치지 않고 그걸 바라보았다.

 

“넌 내가 무섭지 않나 보구나?”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긴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래? 후후, 당연하지. 난 인간이 아닌 걸. 난 요정이야. 세계를 떠돌아다니다가 이 마을에 오게 되었지.”

 

“그렇군요.”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리 쉽게 받아들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인간도 인간을 해치는데, 인간도 아닌 것이 자신을 해치면 어쩌려고. 물론 그러지 않을 거지만. 지금 해가 지고 있지만 그래도 낮이고, 밤이 되더라도 여자아이니까 사냥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렇게 주고받는 대화를 한 것도 오랜만이었고, 즐거웠다. 어떻게 사냥을 하지 않는데, 인간에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나, 네가 마음에 든 것 같아. 그러니까 약속 하나 해 줄래? ……날 봤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줘. 나 같은 게 여러 사람들 눈에 띄면 여러모로 귀찮아져서…….”

 

“네? 네. 약속할게요. 말 안 할게요.”

 

영문을 알 수 없어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을 듣는 아이. 그래, 이런 순진한 아이도 있지. 싫지는 않았다.

 

“샤를리엔, 바람이 차구나. 어서 들어와라. 감기 걸릴라.”

 

“아, 네. 잠깐만요 아버지…… 어?”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문을 열고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반응했다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요정은 이미 아이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요정은 완전히 그 자리를 뜬 게 아니라 단지 아주 잠깐 사이 몸을 숨겼을 뿐이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고, 그 덕에 힘이 돌아오고 있었다. 보통 아이들의 보호자와 만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특히 저 남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저 아이가 자신이 요정이란 걸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인 것도, 저 남자와 관련이 있을까?

 

“샤를리엔…….”

 

요정은 아이가 아버지라고 불린 남자가 담은 말을 제 입으로도 중얼거려 보았다. 그게 저 아이의 이름인가. 왠지 기억하고 싶은 울림이었다. 저렇게 겁 없고 순진하고, 범상치 않은 남자를 아버지로 둔 아이라면 꽤 특별하지 않은가.

 

요정은 그렇게까지 생각하면서, 사냥을 해볼까 고민하면서, 샤를리엔을 계속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평소와 다른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후로도 요정은 가끔 샤를리엔을 만나곤 했다. 사냥 빈도도 줄었다. 원래도 반드시 사냥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고 때로는 유희에 가까운 것이긴 했지만, 스스로 사냥을 자제하겠다고 의식한 건 처음이었다. 대신 동물들을 사냥했다.

 

“음, 어차피 이번엔 좀 더 머물러볼 테니까…… 여기 여행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도 아니고, 여기 사람들은 먹어봤자 맛도 없을 것 같고…….”

 

중얼중얼거리며 변명을 계속 생각하고 한 곳에 머무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면서도 요정은 자신의 행동이 평소 같지 않다는 걸, 이상하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턱, 손질된 짐승의 털가죽 한 무더기가 샤를리엔의 발치에 떨어졌다. 샤를리엔은 제 발로 툭툭 치는 걸로는 꼼짝도 하지 않는 털가죽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요정을 올려다봤다.

 

“너희 인간들은 추위에 약하니까. 인간들은 나약해서 겨울에서 봄까지 살아남아 버티는 것조차 힘들다지?”

 

인간들은 항상 살아남는 것이 힘겨운 어리석고 나약해빠진 자들이었다. 전란에, 역병에, 다툼에, 비관에, 실수에, 재해에, 사고에, 굶주림에, 갈증에, 추위에, 더위에 힘을 못 쓰고 픽픽 쓰러지는 약한 것들.

 

그런데도 누군가는, 어떤 인간들은 이 모든 것을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 죽음이 드리워지지 않는 한, 인간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아무리 약해빠진 자들이어도, 가끔 자신과 똑같은, 혹은 자신보다 못한, 가끔은 자신보다 더한 이들을 걱정하고 손을 내밀고 한쪽 팔을 내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걸로 따뜻한 옷을 만들 수 있겠어요. 또…….”

 

샤를리엔의 볼이 기대에 차 발그레 달아올랐다. 그래, 이 아이는 가죽을 혼자만 쓰지 않을 것이다. 추위에 약한 다른 인간들에게 이 가죽을 나눌 것이다. 그럴 거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너를 위해 생각해서 준 것을 너 혼자 누리지 못하더라도, 지금 당장 네가 감사를 표하는 것이, 기뻐할 것이, 웃으며 나눌 것을 생각하면 바라는 것 그대로 온전히 이뤄지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살면서 요정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가죽을 벗겨내고 남은 살코기들을 아무 데나,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던져놓았다. 아이는 굶주리지 않지만, 다른 인간들은 아니니까. 살코기도, 인간도 먹지 않을 거면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다.

 

“별일이군. 집 요정도 아니면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다니.”

 

“어머, 이게 누구야? 이런 곳에 요정이 다 있네.”

 

샤를리엔의 집 뒤편에서 낙엽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짤막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요정의 무릎에 겨우 올 정도로 작았지만 수염이 났고, 얼굴은 물론이고 낡은 옷까지 구석구석이 그을음과 먼지로 뒤덮여있는 노련한 일꾼같이 생긴 자였다.

 

“……네가 알비온에서 온 요정인가.”

 

“그러는 넌 광산의 요정, 노움 아니야? 인간을 꺼린다는 일 중독 요정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 있어?”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그저 존재하기만 했던 나에게, 우리한테 이름과 존재 의미를 부여한 연금술사가 있었지. 나는 그런 은인까지 꺼리고 벗어날 정도의 자는 아니다.”

 

“흐음~ 그래? 쉽게 말해서 너한테 이름을 지어 준 저 연금술사에게 묶여있는 거네~”

 

“……좋을 대로 생각해라.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거쳐 가지 않아서 우리 같은 요정이 머무르기에, 발생하기에 괜찮은 곳이지. “

 

“그렇지? 고여있는 물처럼 얌전하기도 하다니까~”

 

“하지만 너는 그런 요정이 아니지 않나. 왜 이곳에 머무는 거지.“

 

“……무슨 소리야?”

 

“그 연금술사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도 바로 근처에 인간들이 지나다니는 골목에 대낮부터 드나들지는 않는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너에게 묻고 싶어서 왔다.”

 

“음~ 내가 뭘?”

 

사실 무슨 질문을 하려는 지 알고 있었다. 자신 역시, 본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골목을 대낮에 대놓고 돌아다니는 쪽은 아니니까. 낮에 활동할 수 있으나 무능력해지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척 봐도 인간이 아닌 눈과 다리를 가졌으니까. 샤를리엔은 그걸 알고 배려하려는 건지, 요정을 만날 때면 그늘진 집 뒤편에서 기다리고는 했다. 게다가 노움의 의심대로, 요정은 인간을 해치면 해쳤지 돕는 부류는 아니었다.

 

“인간에게 호의를 갖기 라도 하나?”

 

그러나 듣게 된 말은 뜻밖이었다.

 

“호의? 내가? 샤를리엔한테?”

 

“분명 그렇게 보였다만. 그럼 여기 주민을 사냥할 것도 아니면서 왜 이곳에 머무르는 거지? 그러면서 인간 여자아이에게만 접근하고 대화를 하고 사라진다. 그 아이에게만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호의가 아니면 무엇이지? 버번 시. 너는 남성을 유혹하고, 피를 빠는 요정이 아니던가.”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을 묻는 말에 요정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지적하는 것은 평소에도 일상적으로 하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호의라면 그거지? 좋아한다는 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샤를리엔을 왜 좋아해? 우리, 버번 시, 나의 방식은 ‘남자’를 유혹해 끌어들여서 춤추고 즐겁게, 쾌락을 주며 먹는 것. 그러니까 난 그걸 좋아하는 게 아니야. 먹을 것도 없이 어린 데다가, 여자아이고. 난 한 번도 그 애와 춤춘 적도 없어.”

 

“그렇게 애써 네 마음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 대답을 들었으니 요정으로써 경고를 해 주지. 그러다가 넌 후회하게 될 거다. 요정은 인간과 어울려선 안 돼.”

 

“후회? 내가? 잊어버리는 것에 감정이란 게 있어?”

 

“……때가 되면 알겠지. 이미 늦었겠지만.”

 

그 말을 끝으로 노움은 사라지고 다시는 요정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요정은 어떻게 된 일인지 평소 대로라면 잊어버렸을 그 딱딱한 말을 흘려듣지 못하고 있었다. 쓸모없는 기억 따위는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요정에게 가장 손쉬운 일인데도.

 

시끄러운 마을의 소음 탓에 요정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날이 지나가고 다음 날, 요정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샤를리엔의 집 뒤로 향했다.

 

“또 먼저 기다리고 있었네. 내가 안 오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은 매일 이때 즈음이면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니어도 요정은 아무도 눈을 돌리지 않는 뒷골목에서 몰래 밖으로 외출한 샤를리엔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날 따라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 그 아이가 걱정할 정도로.

 

“아냐, 괜찮아. 그냥…… 너 다쳤어?!”

 

괜찮다고 말을 둘러 데려다가, 시야에 들어온 게 있었다. 샤를리엔의 왼팔에 감겨 있는 붕대.

 

“아, 이거요? 아버지의 연구실을 훔쳐보다가 잘못해서…… 그래도 괜찮아요. 아버지께서 치료도 해주시고, 해결해 주셨어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지만…….”

 

샤를리엔의 아버지는 무척 대단한 연금술사라고 했다. 정말 대단해서, 샤를리엔은 아버지를 무척 좋아하고 잘 따르고 있었다. 그래, 요정의 이름과 존재 의의를 정해 줄 정도니까.

 

“계속 이상해요. 요정 님한테 정말 무슨 일 있어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노움이 한 말 때문에 당분간 너를 보지 않겠다고? 이렇게 자세히 말할 것도 없이 당분간 나를 보지 못할 거라고?

 

그럴 필요 있을까. 요정은 어느 날 갑자기 샤를리엔에게 나타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였다. 그리고, 영영 떠나지는 않을 거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요정은 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작별 인사는 언제나처럼 하지 않았고, 그 날도 마찬가지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도 요정은 다음날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떠나기는 할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떠나기 전, 딱 한 번만 샤를리엔을 보고만 싶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참 바보 같다고 자조했다.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데. 왜 이러는지 대는 핑계라곤

 

‘그 애를 영영 떠나기 싫어……’

 

밖에 없었는데. 정작 왜 그러는지도 모르겠지만. 천 년 동안 떠돌아다니고 살아왔는데, 참 이상했다. 남자도 아닌 인간 때문에 한 곳에 머물고 싶어 한다니…….

 

그때도 하지 못했고, 지금도 잠시 떠나겠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서 요정은 샤를리엔의 집 맞은 편 골목에 서 있었다. 하루 정도 안 본다고 해서 그 애가 신경 쓰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에……

 

그때, 샤를리엔은 요 며칠 간 신경 쓰고 있었던 듯 잠깐 멈춰 서서 바라보곤 했던 지저분한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이 금을 내가 줬다고 말하면 안돼.”

 

……그래, 저렇게. 넌 여전히 상냥하구나. 바보 같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꼬리는 웃듯이 올라가 있었다. 그래, 그래도 저런 모습이 너 너다워. 그리고 왠지 몰라도 너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해. 바보 같더라도, 너라면. 그리고 너의 곁에는 연금술사인 아버지가 있으니까. 그 사람이 널 지켜 줄 테니까.

 

비밀로 하자는 듯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입에 검지를 가져가며 웃는 그 아이를 새긴 것을 마지막으로 요정은 그대로 뒤로 돌았다. 어디로 갈까. 갈 곳을 잃은 것만 같았다. 여태 목적지를 정하고 목표를 정한 적도 없었지만 지금처럼 막막하지도 않았다. 평소대로지만, 평소와 다르게 생각하나 없이 발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너를 잠깐 보지 않기 위해 잠시 떠나는 것이지만, 계속해서 네가 생각났지만…….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노움과 나눈 대화 이후로 이상하게도 가슴이 술렁거리는 것을 알아채서 잠시 그 아이를 보지 않으려고 떠났다가…… 돌아왔었고…… 나는…….

 

번쩍, 눈이 뜨였다. 아지트, 정확히는 그동안 머무르고 있던 곳과 가장 유사한 곳. 오래되고 발길도 끊긴 산속의 건물에서 답답하게 선잠을 청했고, 또 다시……

 

“……또, 꿈…….”

 

그때 울고 또 울다가 지쳐 잠들었을 때 꾸었던 꿈을 반복했다. 이상해지기 전 그때의 꿈을. 이상해졌을 때도 아니고 그 이전만 꾼다. 그러니 이것을 잊을 리가 없다. ……잊고 싶지도 않고. 요정이 이까지 온 이유가 바로…….

 

요정은 고개를 흔들며 작은 창을 내다보았다. 붉게 물드는 것이 곧 어두워 질 터였다. 돌아다니자. 왜 돌아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내키는 대로 먹어도 보고 어리석은 인간들을 끌어내 보자. 이 고통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그날 밤, 가은은 자기 방 책상에 앉아 있었다. 숙제도 이미 끝냈고 책이나 읽을까 생각했지만 뭘 읽을지 떠올리지도, 결정하지도 못하고 자꾸만 생각이 흩어졌다. 그때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웠던,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가은아.”

 

“이안!”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가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창문을 열었다. 덥고 습한 바람이 훅 들어왔고, 이안이 높은 나뭇가지 위에 가볍게 서서 가은과 눈을 맞췄다.

 

“오랜만이네. 들어가도 돼?”

 

“네, 들어와도 좋아요. 당신을 초대하겠어요.”

 

“고마워.”

 

뱀파이어인 이안은 초대 받지 않은 곳엔 들어가지 못했다. 가은의 허락, 초대에 이안은 감사를 표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 없었지?”

 

“네. ……그 흡혈귀에 관련된 소문 때문에 온 건가요?”

 

“알고 있었구나. 하긴, 우리 일족 관련해서 몇 번 일이 생겼으니까.”

 

“이안도 알고 있었군요. 하지만 전 이안과 상관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처럼 전염병이 아니라, 냉방병으로 알려졌잖아요.”

 

“그래. 이건 우리 일족이 한 짓이 아니야. 그것 만은 맹세할 수 있어.”

 

“그럼 도대체, 누가……?”

 

“아무튼, 무슨 일 없는 거지?”

 

“우리 학교에서 남자아이들만 냉방병으로 결석했다고 했어요. 이안. 이번 일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요? 내게도 말해줘요.”

 

이안은 잠시 고민했지만 짧은 시간이었다. 가은의 친구인 퇴마사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방해하지 않게 하려면 미리 말해두는 것이 좋았다.

 

“그래, 남자만 건드린다니 괜한 걱정을 한 걸 수도 있어. 그래, 그 자는 아마……”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흑, 흐윽, 흑흑……’

 

“?!”

 

가은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안은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다가 이내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가은아?”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소리? 무슨……?”

 

“여자의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무척, 슬프게…… 누군가를 애도하는 듯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통곡하는 그런 소리였어요……”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가 생각났다. 그래, 그때와…… 그때와 비슷한.

 

“……밴시? 버번 시라서 너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더 큰 일이 닥친 것 같아.”

 

“밴시? 버번 시? 무슨 말이에요 이안?”

 

“가은아, 당분간 몸 조심해. 알았지?”

 

“이안!”

 

이안은 창문 밖으로 저 멀리 뛰어 날아갔다. 가은은 이안이 사라진 방향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한 편,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요정은 환희에 차 제 두 눈으로 가은을 또렷이 뇌 내에 새겨 기억하고 흥분하며 이안을 따돌리기 위해 정신없이 숲길을 달려 나갔다. 나뭇가지가 스치고, 숲의 상쾌한 바람이 느껴졌다. 뱀파이어와 함께 있었던 소녀.

 

“찾았어, 찾았어, 찾았어, 찾았어!!”

 

울고 있던 것도 잠시, 오로지 희열과 환희만이 요정을 지배했다. 인간이 아닌 것. 뱀파이어가 어딘가로 향하길래 어쩐지 어떤 예감이 들어 따라갔더니……

 

“분명…… 분명, 그 아이야. 샤를리엔. 느낄 수 있어. 저 아이는 샤를리엔이야.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저 아이는 분명 샤를리엔이야. 아아, 드디어, 널 만났구나. 그래, 이제 나는 널…… 다시, 만날 수 있구나.”

 

요정은 춤췄다. 실로 오랜만에 추는 것이지만 존재방식부터, 종족부터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는 것이라 걸음도 몸의 움직임도 잊히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널…… 먹을 수 있겠구나.”

 

그때 내리지 못한 답을,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할 수 있다.

 

 

 

“……놓쳤나. 도망치는 속도는 빠르군.”

 

가은이가 사는 도시를 어지럽히는, 그러나 제 일족도 아닌 흡혈 요정. 이안은 그것 만으로도 벅찬데, 가은이에게 밴시까지 붙어있었다.

 

“어떻게든 꼭, 지켜 줄게 가은아.”

 

쓸데없는 오해를 받는 제 일족을 위해서, 갑작스레 죽음의 예고를 받은 가은이를 위해서. 이안은 두 가지 결심을 다지고 사라졌다.

 

 

 

“이안이 너 보고 조심하라고 했다고?”

 

“응.”

 

다음 날, 가은의 친구들은 신비아파트 1층 마당에 모여있었다.

 

“버번 시, 밴시라…… 신비야. 너 뭐 아는 거 없냐?”

 

“그걸 물어보려고 이 위대하신 신비 님을 찾아온 거냐? 안 그래도 석판의 예언도 해결해서 이제 좀 편히 쉬는가 했더니~”

 

신비의 맨홀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위대하신 도깨비 님의 도움, 설명이 필요해 찾아오는 것도 그에게는 썩 기분 좋은 일이었다.

 

“버번 시와 밴시라면 영국의 요정이야. 버번 시는 밤에 행인들을, 남자를 꾀어내 춤추게 하면서 서서히 피를 빨아 먹어 죽음에 이르게 하지. 뱀파이어와는 조금 달라. 일단 그들은 요정이라서 햇빛을 받아도 죽지는 않고 능력을 쓸 수 없는 정도에 그치거든.”

 

“그럼 최근 애들이 냉방병으로 쓰러지는 게 다 버번 시의 짓이란 말이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 이안이라는 뱀파이어가 그렇게 경고했다면 확실해.”

 

신비의 버번 시 설명이 끝나자마자 금비가 밴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밴시는 말인데, 마찬가지로 영국의 요정이다. 근데 쪼매 무서운 게 있다믄, 밴시는 곧 죽을 사람을 애도하면서 통곡하는 요정이고, 밴시의 울음을 들은 사람은 곧 죽는단 말이제…….”

 

“그럼 그때 내가 들었던 그 울음소리가…….”

 

금비와 가은의 말에 겁 많은 현우와 두리는 벌벌 떨며 횡설수설 했다.

 

“가은 누나 어쩜 좋아아…… 밴시의 울음을 들으면 죽는다잖아, 누나 곧 죽어?”

 

“오피키언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가은이한테 또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아……“

 

“이 녀석들이 못 하는 말이 없어!”

 

하리가 현우와 두리에게 꿀밤을 한 대 놓고는, 자신만만하게 가은이에게 말했다.

 

“걱정 마 가은아. 이안도 네가 걱정 되어서 어떻게든 수를 쓰려고 급히 가버린 걸 거야. 그리고 우리도 네가 위험에 빠지게 두지 않을 거고. 오피키언 일이 지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고마워 하리야.”

 

“그리고 버번 시는 남자애들만 노리니까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김현우, 구두리! 너희 둘이나 몸조심 하셔.”

 

“내 걱정은 안 해줘 하리야?”

 

“엄메야, 이 목소리는 샤방샤방 오빠 아이가?”

 

갑자기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몸이 돌아갔다. 리온과 사라, 아이기스의 두 퇴마사가 신비아파트 현관을 지나 들어왔다.

 

“리온아!”

 

“오빠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오빠는 아이기스고, 충분히 자기 몸 지킬 수 있잖아요. 여, 여차하면 내가 지켜주면 되는 거고! 안 그래요?”

 

“사라도 왔네? 어서와!”

 

“안녕 하리야?”

 

“안녕 하리 언니? 응, 뭐…… 오랜만이네.”

 

확실히 오피키언 일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흠, 역시 그 흡혈귀도, 신비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혹시 아이기스도 버번 시를 쫓는 거야?”

 

“맞아. ……사실, 그 요정, 아무래도 우리가 만난 적 있는 것 같아.”

 

“뭐? 진짜?”

 

“그래. 예언의 석판을 발견했을 때, 버번 시가 우리를 방해하려고 덤벼들었어. 쓰러뜨리지는 못했지. 그런데 예언을 모두 이겨낸 후에 한국에 다시 나타나다니…….”

 

“우연 아닐까?”

 

“우연 아니야. 이거 봐봐.”

 

사라는 스마트폰을 꺼내 몇 번 탁탁 건드리다가 며칠 전의 것인 한 뉴스 기사를 보여줬다.

 

‘속보입니다. DMZ(Demilitarized Zone비무장지대. 군사력을 동원해 무장을 하지 못하는 지역으로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 펼쳐져 있음. 출처: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피를 빨리고 죽은 고라니가 발견되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북한 양측 모두 이 기현상에 대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며……’

 

“이 사건 이후부터 남자들을 대상으로 냉방병이 돌고 있었으니까 동일 개체가 확실해. 예언도 다 이겨냈는데 도대체 왜 이제 와서 국경에 휴전선까지 넘어서 한국까지 온 건지…….”

 

“그래. 해독한 예언 어디에서도 흡혈귀나, 그 유사한 존재에 대해선 언급되지 않았어.”

 

“그럼 그건 왜 너희를 노렸고, 또 여기까지 온 거지?”

 

최강림이 신비아파트 마당으로 들어오면서 질문했다.

 

“강림아!”

 

“꽃도령 오빠야도 왔네!”

 

“너 너무 티나게 좋아하는 거 아냐?”

 

“꽤 늦었네요? 뭐 하다가 왔어요?”

 

“너희들처럼 조사를 위해 본가에 계신 어머니께 다녀왔거든. 그래서 리온. 버번 시가 왜 그랬는지는 몰라?”

 

“응. 왜 그랬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어. 하지만 우리를 방해했던 거에 이어서 여기를 어지럽히고 있으니까 찾아서 막아내야지. 그럼 강림이 너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슬프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기운’을 느꼈다고 했어. 무척 오랫동안 그렇게 지낸 존재라고 하더군.”

 

“아무래도 너네 어머니는 밴시를 포착한 모양인데. 확실히 퇴마사로서는 버번 시를 더 경계해야 하지만, 가은이가 밴시의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그쪽도 경계해야겠지.”

 

그때 신비가 위를 올려다봤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비는 시치미를 뚝 떼고 능청스럽고 아무렇지 않은 듯 운을 떼었다.

 

“야 구두리. 너 잊은 거 없냐?”

 

“무슨 소리야 신비야?”

 

“지금 4시 반이라구. 너 학원 버스 놓친다? 미리 가방까지 갖고 나왔으면서.”

 

“우와악, 정말이네? 형, 누나. 나 다녀올게!”

 

구두리가 다급하게 가방을 매고 아파트 밖으로 뛰어나갔고, 대화의 흐름이 잠깐 끊긴 탓에 그들 사이엔 정적이 흘러 있어 좀 머쓱했다.

 

“아무튼, 나랑 사라는 도시를 순찰하면서 계속 버번 시를 쫓을 생각이야.”

 

“그럼 나랑 강림이는 밴시를 경계하면 되겠네. 가은아, 오늘 너희 집에 있을게.”

 

“고마워 하리야.”

 

“에, 그럼 난?”

 

“현우 넌 늦은 밤에 돌아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도움이야.”

 

“그래 현우야. 버번 시는 남자를 습격하는 요정이고 우리는 딱히 미끼를 쓸 생각이 없거든…….”

 

“미끼라고?!”

 

“아니, 그렇게 안 쓸 거라니까! 이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넌 집에서 쉬어.”

 

“너무해……”

 

현우의 칭얼거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아파트 모임은 해산되었다.

 

 

 

“진짜 너무해. 나도 가은이 친구고 남자애란 말이야! 방해만 안 되면 다행이라는 거야?”

 

날이 어두워진 저녁, 현우는 낮에 있었던 일의 분이 풀리지 않는지 심부름을 갔다 돌아오는 길까지 투덜거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늦은 밤에 다니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밝은 큰길로 다니고 있으니까 괜찮다며, 그리고 그렇다고 엄마 심부름을 땡땡이 칠 수는 없다고 합리화를 하던 와중 외딴 골목으로 새고 있는 구두리가 보였다.

 

“어? 학원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이 시간까지 집에 안 가고 뭐하고 있는 거지?”

 

현우가 빠른 걸음으로 두리가 접어든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골목에는 두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키 큰 여자가 천천히 걷고 있는 두리 주변을 춤추듯이 빙빙 돌고 있었다. 가늘고 창백한 손이 가끔 두리의 턱과 목선을 스쳐 지나갔다.

 

두리가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자 여자도 두리 앞에 멈춰 섰고, 그대로 두리를 들어 올려서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피를 빨아들였다!

 

“우와악, 두리야!!”

 

현우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두리에게 달려갔고, 여자는 사람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으…… 현우 형…….”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현우가 두리를 받아냈지만, 두리의 손은 차가웠고 밤이라지만 덥고 습한데도 추위를 느끼는 듯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현우가 두리가 다친 곳은 없나 이리저리 살펴보니, 목덜미에 긁힌 것 보다는 크고 베였다기엔 작은 가늘고 긴 상처가 가로로 나 있었다.

 

“내 사냥을 방해하다니……”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뒷걸음치던 여자가 현우와 두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오늘 같은 반 친구인 최우석이 한 말이 생각났다.

 

‘어제 내가 김동진 걔 병문안을 가봤거든? 아 뭐, 걱정돼서 간 건 절대 아니고…… 근데 걔가 헛소리를 하잖냐. 냉방병에 걸려 결석한 주제에 뭐라나? 집에 가다가 키가 큰 여자를 봤는데 붉고 긴 곱슬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고……’

 

골목으로 들어오는 덥고 습한 바람에 불꽃처럼 요동치는 붉고 긴 곱슬머리가 풍성하게 일렁였다.

 

‘……다리가 사람 다리가 아니라 염소 다리고……’

 

치맛자락 사이로 염소의 다리가 슬쩍 보였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굽이 따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동공이 사람처럼 원형이 아니라 염소처럼 가로로 길게 생겼다는 거야. 분명 예습하고 발표해서 잘난척하려 했는데 냉방병에 걸려서 억울한데다가 더위까지 먹어서 헛 것을 본 거야.’

 

안경 너머로 분명하게 보였다. 가로등 빛 아래까지 온 여자의 눈동자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동공이 가로로 길쭉했다.

 

“저, 저게 설마 신비가 말한……!!”

 

“널 마저 먹어주지!!”

 

“그렇게는 안 될걸?”

 

“세피르 카드의 힘! 불꽃 방패, 클리페아!”

 

“큭!”

 

여자와 현우 사이로 불꽃으로 이루어진 결계가 가로막았고, 여자는 뜨거운 열기에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결계가 사라지자, 리온과 사라가 현우 앞으로 떡 서 있었다.

 

“리온아! 사라야!”

 

“현우야, 괜찮아?!”

 

“집에서 쉬라고 했잖아요!!”

 

“나, 난 엄마 심부름으로…… 아, 아 맞다! 두리가 저 여자한테 공격당했어!”

 

“괜찮아. 피를 좀 빨렸을 뿐이야. 넌 빨리 두리를 데리고 신비아파트로 가! 버번 시는 우리가 맡을게.”

 

“어, 응. 알았어!”

 

“오빠! 도망치려 해요!”

 

리온이 현우와 두리를 챙기려고 눈을 뗀 사이, 버번 시가 그대로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 그때,

 

“거기까지다 버번 시.”

 

이안이 담장 위에서 뛰어내려 착지해 버번 시의 도주를 가로막았다. 버번 시는 그가 손가락에 끼운 루비 반지를 보고 단번에 상황을 짐작했다.

“하, 뱀파이어? 그것도 왕? 여긴 어인 일로 행차하셨을까?”

 

“네가 날뛰는 바람에 우리 일족이 곤란해져서 말이지. 더는 네가 날뛰게 두지 않겠다.”

 

“칫, 귀찮게 됐네. 너희는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도움이 안 돼!”

 

사람의 피를 먹는다는 식성은 같았으나 버번 시는 단 한 번도 뱀파이어 일족에 속한 적이 없었고, 그들과도 다른, 그저 흡혈을 할 뿐인 ‘요정’이었다. 그렇지만 인간들에게는 그 차이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인지 오히려 뱀파이어로 오인 당하여 시달리고 박해 받은 적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버번 시는 언제나 그것을 혼자 이겨내고 따돌려왔고, 단 한 번도 그들과 접촉한 적도 없었다. 인간과 그들이 전쟁을 벌이는 순간에도.

 

“안 돼, 난 아직 잡힐 수 없어. 그래, 그 아이한테. 더 늦기 전에 그 아이한테……!!”

 

처음부터 목적은 하나였고, 여태까지의 사냥들은 모두 힘을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버번 시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뒤에 리온과 사라도 있었으므로) 몸을 움츠리다가 턴Turn을 돌듯 한 바퀴 빙글 돌며 안개를 흩뿌려 놓고 튀어 오르듯 도약하여 담장 벽을 타고 달려 순식간에 골목을 빠져나갔다.

 

“뭐야, 어디로 간 거야? 오빠! 괜찮아요?”

 

“난 괜찮아! 세피르 카드의 힘! 천상의 우레, 호드!”

 

리온이 만들어낸 충격파가 안개를 흩어놓았고, 겨우 시야가 확보되자 두 사람 눈앞에서 이미 거의 점이 될 지경으로 작아진 버번 시와 그의 뒤를 쫓는 이안이 보였다. 뱀파이어라서 그들보다는 시야 확보가 더 잘된 것 같았다.

 

“오빠, 쫓아가요! 빨리!”

 

“알았어 사라야! 근데 저쪽은…… 가은이의 집인데?”

 

리온은 버번 시를 쫓아가는 이안을 따라가면서 가은이 사는 아파트에 점점 가까워지는 점에서 의심스럽지만, 확신할 수도 없고 당장 고민하기엔 상황이 급박한 탓에 의문을 제기했다.

 

 

 

강림과 하리는 가은의 아파트 근처에 몸을 숨긴 채 밴시나 다른 귀신 등의 위협을 경계하고 있었고, 가은은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한창 싸우고 있을 친구들이 걱정이 되었다. 그때, 창문을 똑똑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그러나 제 눈앞에 있는 것은 창가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머리를 방 안으로 들이밀고 있는, 이안만큼이나 창백한 피부에, 아주 옅은 회색 눈을 지닌 붉은 머리 여자였다.

 

“샤를리엔.”

 

“그 이름은……”

 

여자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이름에 가은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자신의 손목을 향해 뻗어온다는 것을 모른 채.

 

“앗!”

 

순식간에 여자에게 손목을 잡힌 가은이 여자의 힘에 그대로 끌려 창문 밖으로 몸을 반 쯤 내민 모양새가 되었다. 가은은 힘껏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저항해 봤지만, 붙잡고 있는 여자가 더 강했다. 발끝조차 바닥에 제대로 닿지 않아 아슬아슬했다.

 

“네가 바로 그 아이구나. 샤를리엔의 후예……”

 

“놔 줘요, 놔주세요!”

 

“난 이때만을……”

 

“증장의 나무!”

 

그때 아파트 외벽을 타고 굵은 나무가 가은의 방 창틀까지 자라났고, 강림이 나무 위를 달려 가은의 손목을 잡고 있는 여자에게 퇴마검을 휘둘렀다. 여자는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하면서 아래로 떨어졌고, 떨어지기 직전까지 손목을 붙잡혀있던 가은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가은아!”

 

“이런……!!”

 

“꺄아아아악!!”

 

가은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웅크렸다. 추락하면서 등 뒤로, 그리고 귓가로 바람이 평소보다 세차게 몰아치는 것이 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신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바람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아 눈을 떴다.

 

“이안……?”

 

“괜찮아 가은아?”

 

“고, 고마워요. 전 괜찮아요.”

 

“다행이다.”

 

다행히 제때 도착한 이안이 가은을 안아 든 채 마당에 서 있었다. 가은의 무사를 확인한 이안은 안도하며 웃었고, 가은을 내려줬다.

 

“가은아!”

 

하리가 가은을 향해 달려왔고, 가은은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구해줘서 고맙군. 그나저나……”

 

강림이 붉은 머리 여자를 노려봤다. 여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착지했지만, 가은이 무사한 것에 안도하는 동시에 눈을 크게 뜨고 무척 동요하는 듯했다.

 

“밴시는 죽음을 알리는 자이지 죽음을 행하는 요정은 아니라고 아는데. 어머니께서 느끼셨던 그 슬픈 기운은 다 거짓이었나?”

 

“밴시? 밴시라고? 방금 전까지 나와 아이기스의 퇴마사들이 쫓고 있었던 버번 시가 이 자인데?”

 

“뭐? 버번 시라고……?? 밴시가 아니라?”

 

이안의 말에 강림과 하리는 혼란스러워 했다. 아이기스와 이안이 쫓고 있던 버번 시와 강림과 하리가 경계하고 있었던 밴시. 이들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이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저 자는 밴시가 아니었어……!!”

 

“아니, 맞아. 나는 밴시야. 정확히는 본래 버번 시였지만, 한 인간만을 애도하는 별종 밴시이기도 하지.”

 

“그럼 남자들을 습격한 자와 가은이를 위협한 자가……”

 

“그래. 둘 다 나다.”

 

버번 시의 말이 끝나자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 침묵을 깬 것 역시 버번 시의 말이었다.

 

“네가 그 아이구나. 샤를리엔의 후예……!!”

 

“당신은 누구죠?”

 

가은은 방금 전까지 자신을 떨어뜨려 죽일 뻔했던 여자에게 질문했다.

 

“나의 이름은, 이름은, 나는, 나는…… 의미 없어. 나도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니까. 나는 오피키언의 가동 의식을 지켜본 입회인. 그 정도로만 말해주지.”

 

“오피키언? 하지만 예언은 끝났어. 당신이 날뛰어봤자 오피키언은 더는 작동하지 않아!”

 

“그래, 너희가 기어이 우리의 뜻을 꺾었나 보군. 역시 파르켈은 어리석었어. 막판에 결국 결정을 뒤엎는 명령을 입력하다니.”

 

“파르켈의 마지막 명령을 알고 있어…… 저 자, 진짜로 오피키언의 입회인이야. 예언은 이제 이뤄지지 않는데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파르켈의 마지막 명령이 내려지는 것을 가은과 함께 보았던 하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 요 근래 남자들을 습격해서 피를 빨고 가은을 위협한 요정이 오피키언의 입회인이 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고? 애초에 난 오피키언과 예언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 아니거든. 오피키언이 작동을 멈췄다고 해도 내 목적은 변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너다.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 샤를리엔의 후예.”

 

“저는 샤를리엔이 아니에요. 제 이름은 이가은. 그의 환생이지만, 샤를리엔 본인은 아니에요.”

 

“너는 모습이 변해도 너 자신을 유지하고 있구나. 좀 부러운 걸.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너를 샤를리엔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보기엔…… 똑같아. 나는 널 샤를리엔이라 느끼고 있어. 큭,”

 

그렇게 말한 버번 시는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을 호소했다.

 

“아…… 아악,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너,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이상해졌어. 내가 이상해. 대체 이게 뭐야. 너무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

 

“무슨……?”

 

가은은 이해할 수 없어 머뭇거린 순간, 버번 시가 땅을 박차고 손톱을 세우며 가은에게 달려들었다.

 

“꺄아악!”

 

“세피르 카드의 힘! 환상의 장미, 티페레트!!”

 

다행히 때맞춰 도착한 리온의 세피르 카드로 버번 시의 기습은 막히고 오히려 충격이 반사되어 장미 결계를 공격한 버번 시가 충격에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버번 시는 우아하고 민첩하게 착지했다. 치맛자락이 펄럭이면서 염소의 다리와 발굽이 보였다.

 

“이건…… 그 자들과 같은 힘을 쓰는 녀석이군.”

 

“그래. 나랑 한 번 봤었지, 버번 시?”

 

리온은 본격적으로 그를 상대할 것인지 앞으로 나서서 허리에 찬 리더기를 내보였다.

 

“그런가? 관심 없어서.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사냥감 뿐이라 구분이 안됐거든. 그래, 나를 방해할 셈인가?”

 

“물론이지! 아이기스의 퇴마사의 이름을 걸고, 너를 쓰러뜨리겠어!”

 

“나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느끼셨던 슬픈 기운의 존재가 아무래도 너인 것 같지만, 네가 내 친구를 해치겠다고 하면 상대해 줄 수밖에.”

 

“버번 시. 이 도시를 어지럽히고 나의 일족에 대해 오해를 불러 모은 너를, 뱀파이어의 왕이자 가은의 기사로써 처치하겠다.”

 

사라 앞으로 나서며 의기양양하게 카드를 내보였고, 강림도 퇴마검을 다시 고쳐잡았다. 이안 역시 손톱을 드러내며 버번 시를 적대했다.

 

“그래, 너희 모두 샤를리엔의 후예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건가? ‘너’는 복에 겨운 인간이구나.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너를 지켜주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자들은 모두 하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너희도 나와 같은 절망을 느껴라.

 

“그렇게는 둘 수 없다. 모두 비켜라. 나의 목적은 단 하나. 샤를리엔의 후예를 넘겨라. 그러면 이 도시에서, 이 세상에서도 영원히 사라져주겠다.”

 

“영원히……? 가은이를 어째서 그렇게까지 노리는 거지?!”

 

“샤를리엔은 내 먹이가 되어줄 지도 모를 유일한 여자였으니까. 그때 먹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먹어서 확실시하고 말겠어. 그러니 비켜!”

 

“그렇게는 못 둬! 인간은 먹이가 아니야!”

 

“소환! 나와라, 흑진귀!”

 

그때 흑진귀가 버번 시 뒤에 나타나 꼼짝도 못하게 머리카락으로 꽁꽁 옭아맸다. 그 뒤로는 빈혈로 어지러움을 느껴 헉헉대긴 했지만 신비, 금비와 함께 아파트에 도착한 두리가 고스트볼을 겨누고 있었다.

 

“두리야!!”

 

“이안 형! 빨리 가은 누나를 데리고 도망쳐! 버번 시는 우리가 상대할게!”

 

“……!! 알았어. 가은아, 내 손을 잡아!”

 

“네……!!”

 

이안이 가은을 안아 들고 훌쩍 뛰어 아파트를 벗어나자 버번 시는 더욱 격렬하게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강림과 사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고스트 퇴마봉인활검과 세피르 카드를 겨누었다.

 

“빛의 활!”

 

“세피르 카드의 힘! 불꽃 새, 포이니스!”

 

“이익……!!”

 

버번 시를 향해 날아오는 빛의 화살과 불꽃 새에 그는 이를 갈았고, 안간힘을 쓰며 자신을 묶고 있는 흑진귀의 머리카락을 기지개를 켜듯 팔을 움직이는 것으로 조금씩 뜯어내며 틈을 만들었고, 그 틈에 빛의 활을 맞춰 완전히 뜯어내 팔을 자유롭게 만든 후 새에 직격당했다.

 

“해치웠나!”

 

“하아, 하아, 하아…… 그렇게 인간들에게 당했는데, 이까짓 불 따위 우습지……!! 난 너희랑 놀아 줄 시간 따위 없어! 내 목적은 샤를리엔의 후예 뿐이다.”

 

그러나 버번 시는 온 몸에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고 거친 숨을 내쉬며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쓰러지지 않고 그대로 도망쳤다.

 

“거기 서!”

 

“화살만 제대로 맞췄어도……!”

 

“그래도 와, 포이니스를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살아서 도망치네……!!”

 

“정말 맷집도 쎄고 터프한 요정이네. 어디로 도망친 거지?”

 

“이안이랑 가은이 있는 곳이라면…… 짐작 가는 데가 있어. 신비야. 우릴 폐창고로 데려다줘.”

 

“알았어. 나와라, 순간 이동의 요술! 깹!”

 

 

 

이안은 가은을 폐창고에 내려다 주었다. 이안과 관련된 일이 많았던 그 폐창고였다. 시온과의 싸움, 우사첩에게 당한 일족을 격리하고 우사첩과 맞서 싸웠던 바로 그곳이었다.

 

“여기라면 안전……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어.”

 

“그래. 너도 아는 곳 이었나 봐?”

 

“버번 시……!!”

 

이안이 외딴 폐창고에 가은을 내려줬지만, 그곳은 이미 누군가 머물렀던 기운이 있었다. 그리고 그새 그들을 따돌린 조금은 지치고 너덜너덜해진 버번 시가 도착했다.

 

“가은이는 절대 넘겨줄 수 없어.”

 

“아무리 소중히 여기는 존재라고,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할 수 있어. 아니, 반드시 그럴 거야!”

 

“글쎄. 그건 모르는 거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죽어버리는 게 인간이야.”

 

이안은 한동안 쓰지 않았던 왕족의 루비 반지를 버번 시를 향해 겨누었다. 뱀파이어들과 다르게 햇빛이 치명적인 약점이진 않았지만, 태양 빛을 받으면 버번 시는 아무 능력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버번 시는 루비 반지를 알아봤던 것만큼 이안을 향해 뛰어올라 이안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이 정도로 가까우면……!!

 

“왜? 반지를 쓰지 않는 거야? 너까지 휘말릴까 봐?”

 

버번 시는 이안의 손목을 붙잡으며 조롱했고, 그대로 걷어 차버렸다. 염소 다리에서 비롯되는 각력 탓에 이안은 그대로 창고 벽에 쳐 박혔다.

 

“으윽……”

 

“이안!”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걱정할 여유가 있나 봐? 정말이지, 넌 왜 변하지 않는 거야?”

 

버번 시가 손톱을 드러내며 혼자 남은 가은을 공격하려는 순간,

 

“나온나! 보호막의 요술! 깹!”

 

가은의 앞으로 보호막이 생겨나 버번 시의 공격이 막혀버렸다. 또 공격이 막힌 버번 시는 이를 갈며 뒤를 돌았다. 앞서 버번 시를 막았던 자들이 와 있었다.

 

“너희는…… 너희 인간들은!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냐. 미움도, 탐욕도, 종말도!!”

 

“살고 싶으니까. 그 뿐이야!”

 

“살고 싶어서? 너희 인간들이 살면서 부린 헛된 욕심 탓에 그 아이는 본인의 삶을 살지 못했는데! 용서 못해, 너희 인간들을 난 용서 못해!”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버번 시는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하리야, 가은이를 부탁해!”

 

“알았어!”

 

하리가 가은이의 손을 잡고 먼 곳으로 피했고, 버번 시는 가장 먼저 양손으로 신비와 금비의 머리부터 움켜쥔 뒤 던져버렸다. 하필 요술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에너지가 다 충전되지 않은 탓에 반항도 못하고 쳐 박혔다.

 

“세피르 카드의 힘! 불꽃 수레바…… 꺄악!”

 

“방해야!”

 

사라가 카르펜텀을 쓰려고 했지만 마법이 실행되기도 전에 버번 시가 사라의 허리를 걷어 차버려 마법이 취소되고, 사라는 바닥에 쓰러졌다. 안 그래도 체력을 온존하는 법도 미숙한데 기술을 연달아 쓴 탓에 사라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사라야! 일곱 개의 빛의 창, 헤세드!”

 

리온은 주문을 다 외치고 빛의 창들이 버번 시를 향해 날아왔지만, 버번 시는 그걸 다 달리기와 점프, 그리고 나무줄기를 수직으로 타면서 까지 다 피하고, 마지막 한 개가 피할 새도 없이 날아왔지만, 되려 창을 붙잡아버렸다.

 

“이럴 수가……!”

 

“이런 빛의 창은 내 약점이 못 돼!”

 

그러고는 리온에게 접근해서 양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목덜미를 깨물어 피와 정기를 빨아들였다.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리온 역시 사라보다는 능숙하긴 했지만 연달아서 기술을 쓴 탓에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 꽤 큰 타격을 입어 쓰러졌다.

 

“봉인의 칼날!”

 

세 사람이 연달아 쓰러지고 버번 시가 숨 돌릴 틈도 없이 강림의 기술이 작렬했다. 보라색 칼날이 바닥에서 솟구쳤고, 버번 시가 위로 점프했지만 높게 치솟은 칼날이 다리를 스쳤다.

 

“크악! 으윽……”

 

그러나 스쳤다기엔 무척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표정 역시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버번 시는 솟구친 칼날 중 커다란 것 하나를 점프대 발판 마냥 삼아 수평으로 점프해서 최강림을 덮치고, 리온과 마찬가지로 피와 정기를 빨아들였다.

 

이안, 사라, 리온, 강림까지 모두가 쓰러지고, 버번 시는 비척대는 걸음으로 천천히 가은에게 다가왔다. 하리가 가은 앞으로 나섰지만 이대로는 안 되었다.

 

“……샤를리엔. 이번에야말로, 나와 함께 끝을 내자. 그때 하지 못했던…….”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버번 시를 이길 수 있지…… 아!”

 

이제 전투가 가능한 사람은 여태까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때를 엿보고 있었던 하리 밖에 없었다. 어떤 귀신을 소환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요정의 다리와 발바닥에 화상을 입은 듯 붉고 물집이 잡힌 상처가 시야에 잡혔다. 통한 공격은 몇 없었고, 그 중 가장 효과가 있었던 것은 바로 강림의…… 신비 역시 뒤늦게 무언가를 기억하고 하리에게 외쳤다.

 

“그래. 하리야, 쇠야! 요정은 쇠에 약해!”

 

“그래, 쇠야! 알았어! 소환!”

 

하리는 신비의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귀신이 있었고, 망설임 없이 고스트 볼을 꺼내 들었다. 강림이 봉인의 칼날을 썼을 때 요정은 바닥에서 솟구치는 칼날을 피했고, 그 중 피하지 못한 단 하나 탓에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니 절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강력한, 쇠로 이루어진 것을……!!

 

“나와라, 치돈귀!”

 

하리의 고스트볼에서 시내버스의 형태를 한 원귀, 치돈귀가 소환되어 요정을 향해 달려 나갔다. 연이은 전투에 체력이 떨어진 요정은 자신에게 가장 크고 위협적인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들이받았다.

 

“크아아아아악!!!!!”

 

직격이었다. 커다란 쇳덩이를 온 몸으로 받아낸 요정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고 검은 상처로 뒤덮인 채, 더는 저항할 힘도 없는 듯 꼼짝없이 바닥에 뻗어 있었다. 요정은 여전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아, 샤를리엔, 샤를, 리엔…… 나는, 널…….”

 

“하아, 하아…… 저거, 아직도 살아있어.”

 

“몇 명이랑 연달아 싸웠는데, 아직도?!”

 

“끈질기기도 하군…… 하리야?!”

 

강림과 리온이 힘겹게 호흡을 고르다가 치돈귀의 뺑소니에 무력화 되었다 지만 살아있는 요정을 향해 다가가는 하리를 불러 세우려고 했다.

 

“하리야, 가까이 가지 마!”

 

“그래 하리 언니, 내가 끝장낼 거니까!”

 

“괜찮아 강림아, 리온아, 사라야. ……내가 헤론이 아니라 치돈귀를 쓴 건, 이 자를 없애고 싶지 않아서야. 더 알고 싶기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하리는 긴장하며 꿀꺽 침을 삼키며 요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헉!!”

 

그리고, 하리의 눈앞으로 요정의 길고 긴 과거가 보이기 시작한다. 애써 잊으려고 했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어째서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란과 역병은 쉽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위와 추위는 비슷한 주기로 돌아오곤 했다. 아무리 인간들이 서로를 죽여대고 죽게 하고 죽음을 옮겨다녀도, 그들의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 가는 것은 몇 번이고 돌아오는 자연 그 자체였다. 가혹한 겨울을 버텨내고 기껏 살아남은 이들도 봄을 적응하지 못해 쓰러져 그해 여름을 알지 못하는 일도 잦았다.

 

또다시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그러나 아이는 여름을 맞이하지 못했다. 너는 그 해 여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생명을 앗아 간 원인은 적응할 새도 없이 바뀌는 자연도 아니었다.

 

더 태울 것이 없어 사그라진 불꽃들, 무너진 한쪽 벽, 흉흉한 기계장치 주위로 쓰러져있는 수많은 인간들, ……그리고 푸른 빛의 결계 안, 숨을 쉬지 않는 네가 있었다.

 

“뭐야. 네녀석들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인간들이 들고 있는 횃불이 일제히 뒤로 향했다. 횃불의 빛이 내 눈앞을 향했고, 빛을 받은 동공은 서서히 좁아져 짐승과 같은 가로로 된 형태가 되었다.

 

“괴, 괴물……!!”

 

익숙한 매도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인 게 아니다. 이 자들은, 샤를리엔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간들이 틀림없었다!!

 

“당장 이 곳에서 꺼져!!!!”

 

손에 피가 묻고, 피가 튀었다. 그러나 그 누구의 피도, 그 어떤 피도 입에 머금고 싶지 않았다. 몸 속으로 넣고 싶지 않았다. 혐오감만이 일었다. 먹기 위한 사냥도 아니고, 재미 삼아 갖고 놀지도 않고, 현혹해 끌어들이지도 않은 살육이었다.

 

오로지 죽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죽였지만 혐오감은 사라지기는 커녕 더욱 커진 채로 방치되었다. 후련함 따위 느끼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몇몇 인간들은 현혹하지 않은 탓인지 놓쳐버렸다. 나는 샤를리엔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잡혀있었다.

 

“……샤를리엔.”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단 한 번 한 행동 탓에. 만약 내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네가, 살았을까? 나는 널 지켜 줄 수 있었을까? 이 사건에서, 저 기계에게서, 이 잔인하고 가혹한 봄에서…….

 

너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아, 정말 바보 같다. 하지만 네가 바보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진정으로 바보 같은 건, 인간이 얼마나 잘 죽어가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잠깐 자리를 비운 요정이니까! 도대체 뭘 믿고, 너는 괜찮지만 다른 인간들까지 괜찮은 것이 아닌데.

 

“……넌. 염소의 발굽, 녹색 드레스…… 언실리 코트(Unseelie Court), 흡혈 요정, 버번 시 아닌가.”

 

연금술사 파르켈이 뒤늦게 도착한 날 알아보자 흠칫 놀랐다.

 

“날…… 알고 있었어?”

 

“어느 아비가 딸이 만나는 자를 신경 쓰지 않겠나. 언실리 코트는 인간에게 해만 끼치는 요정이지만, 너는 내 딸에게 직접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아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에반을 보낸 후로 그 아이가 그토록 잘 따르는 자는 네가 처음이었고.”

 

“………….”

 

그러고 보니 이자는 정령들에게 이름을, 존재 의미를 부여한 남자이기도 했다. 인간 세계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자였다. 그런 자도 딸의 죽음을 막지 못해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내 딸의 선심을 이용하려고 했다. 도저히 난…… 그들을 용서할 수 없어.”

 

“도와줄게. 말해줘. 누구를 죽여버리면 돼? 당신 앞에서는 내가 어떤 자인지 굳이 설명 안 해도 되겠네. 죽일게, 다 죽여버릴게!”

 

나는 지금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닌 사냥을 말하고 있었다. 먹지도 않은, 먹을 일도 없을 인간 소녀 하나 때문에. 그러나 연금술사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럴 필요 없다. 나는…… 모든 인간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명령은 모두 준비되었다. 언젠가 오피키언은 모든 인간들을 없애버리고 멸망을 부르겠지.”

 

“언젠가?”

 

“기회를 주는 거다. 이 참사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몇 있다. 그들은 이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두려움에 떨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모르는 자들에게 경고를 내리면서 경각심을 부르겠지. 그리고 이 일을 아는 자들 중 유일하게 단 한 명. 죄책감이란 것을 가진 아이가 있다. ……그것을 고려하며 기회를 주려는 거다.”

 

“……아니. 당신의 희망은 짓밟혀 버릴 거야. 인간들이 고작 몇 명 죽어 나가는 경고로 정신을 차릴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버릴 거야.”

 

나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순식간에 죽어버린 샤를리엔처럼. 모든 인간들은 기대를 저버린다.

 

“알고 있다. 충분히 알고 있어. 나는 알아…….”

 

“알면서 왜. 당신, 사실 기회조차 주고 싶지 않잖아. 그 꼬맹이의 존재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이 자리에서 명령을 입력한 거잖아. 그런 당신이 무슨 기회를 말하는 거야.”

 

“네 말이 맞다. 기회 따위 저자들에게는 너무 과분한 것이지. 이건 자비에서 비롯된 유예가 아니야. ……아직 힘이 부족하다. 오피키언이 기동 되려면, 완전히 완성되려면, 암흑 에너지와 그것이 쌓일 시간이 더 필요해. ……그리고 그때까지 무사히 이것을 숨겨야지. 끊임없는 경고는 에너지의 소모만 부른다.”

 

“그래? 그럼 숨길 장소가…… 필요하단 말이지?”

 

“그래. 그 어떤 인간도 다가올 수 없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깊은 죄업을 모을 수 있는 차원의 틈새. 그런 곳이 있다는 이론은 증명할 수 있다. 남은 건, 그곳으로 가는 것 뿐이지.”

 

문제 없다. 나는 그것을 내어 줄 수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할 것이 있다.

 

“그럼, 이걸 가져가.”

 

“뭐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무게감의 ‘그것’이 파르켈의 두터운 손에 안착했다. 그의 손의 주름과 굳은 살 사이로 아주 작은 씨앗이 자리하고 있었다.

 

“요정들의 왕, 오베론이 떠나는 내게 하사한 것이지. 언제든 인간 세계가 질렸을 때 티르 너 노그, 아발론으로 돌아오라고…… 그 곳의 사과 씨앗이야. 이걸 지니면 요정향으로 갈 수 있어.”

 

“왜 나한테 주는 건가? 이걸 나한테 주는 이상, 너는 나와 뜻을 함께하게 된다. 그래도 괜찮은가?”

 

“오피키언을 숨길 곳이 필요하잖아? 요정향으로 향하는 차원의 틈새. 적당하잖아? 괜찮다니까. 지금 이건 자비를 베푼다 거나 그런 게 아니야. 당신의 의식에 동참하는 거지. 그러니 당신은 끝까지 이걸 완성해야 해. 알아 듣겠어?”

 

“오피키언의 입회인이 되겠다 그건가. 인간에 불과한 날 네 고향으로 보내도 괜찮은 건가?”

 

“어차피 그곳은 요정들의 땅. 인간의 몸으로 갈 수 있는 지점은 한계가 있어. 제대로 초대 받지 못한 자는 들어갈 수도 없고 말이야. 인간이 그 씨앗을 지닌다고 해도 정식으로 초대 받는 것도 아니야. 난 요정이라서 이 정도 허락 만으로도 갈 수 있지만.”

 

파르켈은 다시 한번 씨앗을 내려다 보았다. 최소 수십, 수백을 되었을 것 같은 씨앗은 갓 빼낸 것처럼 광택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토록 작고 가벼운 것이지만 단 한 번도 잃어버린 적 없이 소중하게 간직해왔다. 그야 그것은, 나를 고향으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지? 그대는 왜 내 입회인이 되었는가?”

 

“당신과 같은 이유야.”

 

샤를리엔의 죽음.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 속에서 울렁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샤를리엔이 죽었기 때문에 오피키언에 협력했다. 단 하나밖에 없는 초대장을 주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서. 샤를리엔의 죽음이 이유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울렁거리는 가슴 속 고동이, 오키피언이 인간들을 모조리 없애고 멸망을 가져올 때를 생각하면 나아지고 있기에 협력할 뿐이었다.

 

“그러나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어야겠지. 너는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바라는 게 없어. 없어…….”

 

하지만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다. 왜인지도 모르겠고, 고향을 잃는 대가로도 적당치 않은 그것.

 

“샤를리엔이 죽었을 때 입고 있었던 옷을 줘. 그게 갖고 싶어. 그것만을 원해.”

 

파르켈은 잠시 입을 닫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옷 그대로 딸을 화장할 생각은 아니었다. 나의 창조물이 내 자식을 없앤 증거가 남아있는 걸, 어찌 내버려두겠는가.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샤를리엔을 묻은 뒤 파르켈과 버번 시는 본격적인 오피키언의 가동 의식을 시작했다. 사과 씨앗이 빛나기 시작하고, 이공간이 나왔다. 기나긴 복도 같은 곳이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넓은 광장 같은 공간이 나왔고, 파르켈은 오피키언을 내려놓았다. 바닥에 무한을 형성한 듯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졌다.

“나의 오키피언이여. 너에게 명령을 내린다.”

 

오피키언을 설치하는 파르켈의 뒤로, 우리가 함께 걸어온 복도의 반대편 쪽으로 싱그럽고 낯설지 않은 녹색 빛이 아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애써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며 옷가지를 껴안듯이 품에 꽉 움켜쥔 상태로 연금술사가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명령을 입력한 뒤, 파르켈은 내게 톱니바퀴 같은 것을 건넸다.

 

“이건 오피키언의 일부이기도 한 파편이다. 먼 훗날 오피키언이 작동될 때, 이것은 본체와 공명해서 반응할 것이다. 나의 하나 뿐인 입회인이여. 그대에게 이를 주겠다.”

 

“……저것이 작동할 때, 나도 멸망의 대상이 될까?”

 

“글쎄. ……모르겠군. 저것이 판단하는 것에 따라 다르겠지. 저것은 나의 의지와 영혼을 담고 있으나 나 자체는 아니다. 명령의 범위를 해석하는 것도 기계장치의 능력이니까.”

 

“상관 없어. 되든 안 되든 어쨌든 증오스러운 인간들은 확실히 다 쓸어버릴 테니까. 그렇지?”

 

“그런가. 그래, 당연하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나 그 말을 하는 파르켈의 표정은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어딘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 듯이.

 

“……나 파르켈은, 먼 미래의 인간들에게 고한다.”

 

그러고는 이미 끝나버린 명령에 또 다른 명령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딸이나 아버지나 똑같구나. 어차피 저것이 이루어질 리도 없었다. 샤를리엔은 죽었다. 죽었으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말을 한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파르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전까지 파르켈에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사냥하기에는 나이가 들어 관심 가질 이유도 없었고, 그저 샤를리엔을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아버지일 뿐. 운 나쁘게 희생자가 될지도 몰랐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남은 것으로 끝인. 가끔 내가 파르켈을 떠올린다면 만약 젊은 시절의 그를 만나서 사냥해버렸다면 샤를리엔이 태어나지 않았겠지. 란 생각이 문득 스쳤을 때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우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샤를리엔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 또……. ……그것이 이 묘한 유대감을 만들어 주었다.

 

“난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

 

“……나 역시, 네가 죽은 에반을 대신해 그 아이의 친구이자 누이처럼 있어 줘서 고마웠네.”

 

그래서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유대감 하나 만으로. 샤를리엔에게도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고 느꼈다. 무슨 차이인지는 현재로선 모르겠지만.

 

“안녕.”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의 딸에게 하지 못한, 생각지도 못한.

 

그렇게 연금술사 파르켈은 그렇게 오피키언과 함께 당도하지도 못할 요정향의 경계에 남겨지고, 나는 돌아갈 곳이 없이 이미 피가 바래진 옷만 들고, 부서지고 무너져버린 집에 홀로 남겨졌다. 집 안팎 사방에 널려있던 금을 원하는 탐욕스러운 인간이었던 것들은 누군가 의식을 치르던 와중에 치워버렸는지 없었다. 그래, 돌아온 파르켈의 집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아 공허했고, 어떤 소음 하나 없이 고요했다.

 

툭, 하고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뚫려버린 천장을 통해 빗물 등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옷을 들지 않은 빈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피가 섞인 눈물이 흘러나왔다. 샤를리엔이 묻힐 때조차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애초에 처음부터 제정신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나고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버린 것이었다.

 

고향으로 더는 갈 수 없기에 흐르는 눈물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이상해져 버린 것 같았다.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현혹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인간들 몇을 죽이고 피조차 먹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아, 아아, 아아아……!!!!!”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한 소녀의 죽음을 떠올리며 울었을 뿐. 눈길 줄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여자아이를 떠올리며, 계속, 계속……

 

나는 더는 흡혈 요정 버번 시조차 아니며, 죽음을 예고하고 애도하는 밴시도 되지 못했다. 때로 굶주림에 이기지 못해 이전과 같이 피를 먹곤 했으나 그것도 이젠 가끔일 뿐, 매일매일 애도의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단 한 사람, 과거의 인물을 향한 애도였다. 날이 갈 수록 더더욱 먼 과거가 되어버리는…….

 

매일매일 샤를리엔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엔 세상에는 즐거운 것이 많았고, 동시에 마음과 감정을 쏟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자신을 위해서 가 아닌 타인을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 없어서 죽은 그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도 울음에 포함되어 있었겠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샤를리엔의 죽음과 임종을 지켜보지 못해 대신 올리는 애도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흘려보는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그때 이후로 무너진 연금술사의 집에서 샤를리엔의 옷을 들고 끊임없이 울고 통곡하고 애도했다. 때때로 울음이 잦아들면 연금술사가 입회인을 위해 남기고 간 오피키언의 일부, 파편을 바라보곤 했다. 아직 예언의 때가 아닌지 파편은 대체로 침묵하고 있었다.

 

들린 옷가지에는 아직도 그 아이의 향기가 그 옷에 묻은 핏자국처럼, 얼룩처럼 남아선 맴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으니까. 환후가 분명했다. 그야, 버번 시에게 체취란 사냥감을 찾을 수단이었으며, 사냥감이란 보통 남자였으니까. 착각인 것이 분명한데도,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가끔 집 밖으로 나가 샤를리엔의 옷가지를 빨기도 했다. 해본 적도 없어 빨래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저 물에 적시고 비비는 것밖에 되지 않았지만. 핏자국조차 변색되어 비누로 빨아도 제대로 빠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런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래, 이건 밴시의 행위였다. 그러나 본래 밴시의 행위는 저런 것보다 더욱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대로 집안을 지켜보고, 죽음을 애도하고. 그렇기에 나는 밴시가 되지 못했다.

 

가끔 울음조차 나오지 못하고 목이 잠겨버려 애도를 하지 못하게 되면 허기가 급격하게 밀려와 비척대며 사냥에 나섰다. 이는 버번 시의 행위였으나, 사냥감을 죽이지 못한다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기에 존재 방식도 흐려지고 빛을 잃었다. 어찌 보면 몰락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나는 버번 시조차 아니었다.

 

버번 시는 사냥감을 희롱하고 꼬여내어 즐겁게 갖고 놀다가 죽인다. 밴시는 단 한 사람,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사람만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렇기에 나는 버번 시도 아니며, 밴시조차 되지 못한 어중간한 자가 되었다. 눈동자도 이를 증명한다는 듯 어느 날 물가에서 내 눈의 변화를 알 수 있었는데,  흡혈종의 특성인 붉은 눈동자는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며 색을 잃어 하얗게 변해버렸으나 본래 흡혈종이었기에 가장자리에는 붉은 기가 남아 있었고, 동시에 매일매일 운 탓에 흰자위는 붉게 충혈 되어있었다.

 

끊임없이 통곡하는 여인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어느 사람들도 연금술사의 집에 다가가지 않았다. 무너지고 버려진 상태 그대로, 그 집은 방치되었다. 나는 아무도 살지 않아 존재 의미를 잃은 집을 그 후로도 계속 본의 아니게 지켜냈다. 마을까지 사라지고 그저 바위와 돌만이 있는 황무지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흰 바탕에 푸른 무늬가 그려진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다른 인간들처럼 그리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니었다. 버번 시의 존재 방식이 흐려진 탓에 저렇게 만만하지도 않은데다가 많은 수의 이들을 상대할 능력이 없었다. 겁을 먹는 자들도, 도망칠 자들도 아니었기에 그 영역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파르켈. 역시 난 당신 만큼은 되지 못하나 봐. 저런 것들도 제대로 처리 못하고. 이제 난 가만히 애도조차 못하게 되는 건가.”

 

그렇게 자조하며 주저앉아 버렸을 때, 파르켈이 나에게 건네주었던 오피키언의 파편이 부르르 떨렸다. 저 징조는 즉……

 

“하하, 하하하하하하!!!!! 아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파르켈! 드디어 우리의 소망이 이뤄지는 구나! 그러면 상관없지. 상관 없어, 상관 없어, 상관 없어! 자, 가져가라 인간들아. 예언을 가져가고 피할 수 없는 종말을 알아라. 두려움에 떨며, 무참하게, 무력하게 멸망을 맞이해라! 이것이 내가 그토록 기다린 순간이니까!”

 

파르켈이 약속하고 선언했던 그때가 머지않아서 오랜만에 웃었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고, 허무함에 의미 없는 실소만이 남았다.

 

오피키언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멸망하고 나면 과연 나는 죽고 없을 것인가. 아니면 그 위대한 연금술사가 단 하나 뿐인 입회인을 안배하여 살려둘 것인가. 그러나 살아서 뭐 하겠는가. 샤를리엔은 죽고 없다. 인간들이 시간이 흘러 변함 없더라도, 샤를리엔을 죽음으로 몰게 한 그 인간들은 내가 애써 뭘 하기 전에 다 죽어버렸다. 무력하게도, 멍청하게도, 나약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허무해졌고, 결국 인간들을 조롱하고 방해하는 것도 그만두고 다시 틀어 박혀서 파편을 바라보았다. 올지도 오지 않을 지도 모를 자신의 죽음을, 인류의 종말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수백 년의 세월 끝에 샤를리엔의 옷가지는 낡고 해져 형태도 남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어차피 모두 다 사라질 것이다…….

 

어느 날, 파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파편 주위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모래바람이 불었고,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붉은 독을 품은 물줄기가 흐르고, 불개미 떼가 몰려들고, 눈보라가 들이닥치며 얼어붙고, 전류와 다른 쇠붙이들을 끌어모으는 것이기도 했다.

 

“……시작됐구나. 여섯 개의 예언이……. 오래도 버텼군, 어리석으면서도 끈질긴 인간들. 상관없어. 오피키언이 움직이고 여섯 개의 예언이 실행된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이 모든 징조들은 별것 아니었다. 요정은 그저 종말이 본인 역시 덮치길 바라면서, 파편을 바라보기만 하며 웅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파편이 그 어떤 때보다도 심하게 떨리고 공명하다가…… 멈췄다. 그러고는 건드리지도 않았는데도 부서져 버렸다. 그냥 파손된 것이 아니었다. 이건……

 

“오키피언이, 멈췄어……? 역시 파르켈이 실패했나? 아니야, 이건…… 스스로 작동을 멈춘 거야.”

 

입회할 때 연금술사가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이 생각났다. 그때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었던 만약의 만약을 상정한 바보 같은 말.

 

‘난 샤를리엔을 죽게 한 이 세상을…… 쌓여만 가는 인간들의 추악한 죄를 끝까지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샤를리엔의 뜻은 다를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오피키언에게 명령을 내리고자 한다. 먼 훗날 미래에도 샤를리엔의 뜻이 이어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 곁에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오피키언은 작동을 멈추고 사라질 것이다.’

 

그 바보 같은 말이 이뤄졌다. 샤를리엔이 죽었는데도, 저 말이 이뤄졌다. 그 말은……

 

“그러면, 샤를리엔의 뜻이 이어지는 거야. 유지를 잇는 존재가, 나타난 거야……!! 샤를리엔. 정말 너야? 다시,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너를?”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다. 요정은 샤를리엔이 다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절대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해 잊어버리고 있었던 노움의 경고.

 

’그렇게 애써 네 마음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 대답을 들었으니 요정으로써 경고를 해 주지. 그러다가 넌 후회하게 될 거다. 요정은 인간과 어울려선 안 돼.’

 

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노움. 너는 먼 미래의 나까지 걱정하여 경고를 남긴 것이구나. 이것이 그가 경고했던, 인간을 좋아한다는 마음. 나는 그때 그것도 모르고,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래, 그래! 난, 난 너를 먹고 싶었던 거야. 기왕이면, 내가 너를 먹는 거로…… 널 끝내고 싶었던 거야. 나만이 너를 끝내기를 원한 거야! 그래, 갈게. 너를 먹기 위해 가겠어. 샤를리엔, 이번이야말로 내가 널 끝내줄게.”

 

그렇기에 요정과 인간은 어울릴 수 없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노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도 뒤늦게 마음을 긍정했다. 그러니 먹고 싶었다는 이 생각도 긍정하겠다. 긍정 해야만 한다. 이 마음을 위해, 너를 먹기 위해 나는 너를 찾겠다.

 

이것은 천 년 동안 돌아다닌 것 보다 더 길고 머나먼 여행길일 것이다. 달리고, 또 달렸다. 오로지 ‘샤를리엔을 다시 만날 수 있다’라는 생각만으로.

 

산맥을 넘고, 황무지를 넘고, 숲을 넘고, 산을 넘고, 철창을 너머. 그의 기억보다 더 비대해진 회색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낯선 땅에 도달했다. 이곳에 오면 너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그 무모한 예감 하나만 믿고, 이렇게, 이렇게…….

 

“일단, 배고파. 배가 고파…… 우선, 먹자. 사냥을 하자…….”

 

그러나 나는 흡혈 요정에서 전락해버린 탓인지 아무리 먹고 먹어도 제대로 채워지는 것 하나 느끼지 못하고, 사냥감도 죽음에 이르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닌 듯했다.

 

“배가 고파. 속이 텅 비었어. 모르겠어. 오베론, 파르켈, 샤를리엔. 이건, 뭐야……?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건 뭐지?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걸 채울 수 있는 거야……. 샤를리엔을 끝낸다고, 과연 끝날까?”

 

스스로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고, 누군가 대답해 주지도 않는 갈 곳 없는 의문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요정의 길고 긴 기억이 끝났다. 안 그래도 체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치돈귀에게 들이받아 생긴 상처는 쇠로 인해 생긴 탓인지 좀처럼 낫지 않아 요정은 도망도 치지 못하고 쓰러진 상태로, 그저 더운 숨을 헉헉 뱉어내며 표정을 구길 뿐이었다.

 

“다…… 봤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않으려는 것까지, 전부……!! 네가, 파르켈이 예언한 그 아이로구나. 샤를리엔과 함께해 줄 그 아이. 네가 그 아이라면, 당장 내 눈앞에서 비켜……!!”

 

“그럴 수는 없어. 그때처럼, 가은이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니까.”

 

그러나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인간에게는 더는 투지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보았던 살아있던 샤를리엔의 눈빛과……

 

“아아아아아악! 저리가, 저리가! 네가, 네가 왜 샤를리엔과 똑같은 눈을 하는 거야! 난, 난……! 사실 난 널 먹고 싶지 않아! 널 먹을 생각 없어! 모르겠어, 내가 뭘 원하는지, 이게 뭔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저 샤를리엔을 죽게 한 증오스러운 인간들을 모조리 없애고 싶을 뿐이었어! 하지만 파르켈은 마지막에 마음이 흔들려 약해지고, 그 탓에 넣은 명령으로 그 기회를 스스로 없앴지!”

 

“파르켈은 인간을 미워했어. ……하지만 그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에게 벌을 주고 싶었을 뿐, 모든 인간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 했어. 그래서 샤를리엔의 뜻을 존중하려고 했던 거고.”

 

‘희망을 이어가라, 인간들이여…….’

 

그때, 떠올리지 않은 파르켈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명령 뒤에 덧붙여진 바람인지, 희망 사항인지도 모를. 이것만큼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이 뜻인가? 인간들에게 희망을 이어가라고 했으면서, 정작 희망을 품은 것은 파르켈 본인이었단 말인가? 그래서 종말이 아닌 단죄를 원했단 말인가?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파르켈은 단죄를 원했으나, 요정은 죽음을 원했다. 그러나 무엇을? 누구의? 샤를리엔을 죽게 한 자들은 이미 다 죽고, 이들은 그때와 상관 없는, 단지 같은 원죄를 가지고 있을 뿐인데?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나는 인간을 멸망시킬 수 없어. 하지만 샤를리엔. 저 아이라도, 저 아이의 끝 만큼은 내가 내주겠어! 그때처럼 빼앗기지 않겠어!”

 

“정말인가요?”

 

“가은아, 가까이 가면 안 돼!”

 

“괜찮아요 이안. 하리야, 괜찮지?”

 

이안이 우려로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그의 의도를 아는 듯 웃으면서 괜찮다며 고개를 젓는 가은의 모습에 손을 거뒀다. 하리 역시 가은의 말에 끄덕였다.

 

“응 가은아. 널 믿어.”

 

“고마워.”

 

가은이 하리를 지나쳐 요정 앞으로 다가갔다. 요정은 크게 동요하며 몸을 떨었지만, 다친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요정은 가은을 죽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가은은 자신을 죽이겠다는 사람에게 다가가 재차 묻고 있었다. 하리 역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얼굴로 가은을 죽이겠다는 요정에게 다가가게 해주었다.

 

“당신은 정말로 절 죽이고 싶은가요?”

 

“그, 그래. 나는, 너를. 너를…….”

 

“아니야. 당신은 샤를리엔을 사랑한 거였어. 예전에 샤를리엔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해서, 이번이야말로 꼭 지켜주고 싶었던 거야. 누구도 샤를리엔을, 가은이를 해치지 못하게.”

 

동정과 온정이 담긴 하리의 말에 요정이 상처가 벌어지는 거세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크게 악을 썼다. 어떻게든 하리의 말의 부정하기 위해 억지를 쓰려는 듯.

 

“아니야! 이건 사랑이 아니야. 내가 바라던 대답이 아니야! 우리의 방식은 먹고 부여하는 것. 그것이 재능이든, 무도든! 그리고 최후에는 스스로 사랑을 끝장내야 해. 그러니까 난…… 먹지 못했으니까, 나난, 저, 저걸. 사랑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면…… 널 먹어야 한단 말이야!!”

 

“아뇨.”

 

가은이 만신창이가 된 요정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요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 탓에 요정의 동공은 가로로 줄어든 상태였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버번 시, 밴시, 당신. ……그동안 죽은 샤를리엔을 계속 기억해줘서, 슬퍼해 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오랫동안 잊지 않았군요.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계속 기억하고, 슬퍼해 줬군요. 그리고 나를 찾아…… 이곳까지 와주었군요.”

 

그러곤 요정을 끌어안았다. 지금이야말로 샤를리엔의 후예, 이 아이를 죽일 수 있는 기회다. 이번에야말로, 이번 만큼은 너의 끝을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스스로 부정한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 먹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함으로써 먹을 수 있고, 먹음으로써 사랑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고향을 떠난 이례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진정한 손길이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보는 포옹이었다. 그냥 이대로 받고 싶었다.

 

마치, 자신이 진정으로 받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는 듯이…….

 

“나를, 샤를리엔을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나를 향해 지어 준 미소, 따뜻한 말. 너는 변하지 않았다. 너를 죽이려고 한 나에게, 너는 그때처럼, 다른 인간들처럼 대해줬다. 너는 변하지 않았다. 또 네가 이렇게, 먼저 다가와 주는구나.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

 

눈물이 흘러나왔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흘리는 눈물은 가슴에 응어리도 만들어내지 않고 오히려 그동안의 울분을 씻어내었다.

 

사랑했기에 500년 간 통곡하며 애도했고, 사랑했기에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자신을 몰아세웠고, 사랑했기에 먹지 않았다. 절대 되감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바란 것은 단 하나였다. 따뜻했던 널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단 한 순간이라도 그저 스칠 수만 있다면……

 

이를 지켜보던 이안이 요정에게 다가와 말했다.

 

“버번 시. 나의 일족이 되어라.”

 

“……뭐?”

 

“나의 일족이 되고, 나와 함께할 기회를 주겠다. 넌 이대로 가면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죽어. 그런 너에게 내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이봐, 나도 피를 먹어서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너 같은 흡혈귀가 아니라 흡혈 요정이야. 낮에도 돌아다닐 수 있다고. 그리고 난 오베론을 따라가지 않은 이례로 언제나 떠돌아다니며 살아온 자유로운 요정이라고. 무엇보다도 방금 전까지 싸웠던 자에게 일족이 되라고 제안한다고? 제정신이야?”

 

“하지만 너의 그 눈동자와 다리는 널 인간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지. 안 그래? 그래서 고향을 떠난 이례로 여태 정착하지도 못하고, 다른 누구와도 어울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닌 거 아닌가? 내 일족이라는 소속이 생기는 게 나쁜 건 아닐 텐데.”

 

“……윽.”

 

“게다가 낮에도 활동할 수 있는 건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되니까. 그리고 나도 가은이를 무척 좋아하거든. 나와 함께하면, 언제든 가은이를 지킬 수도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은 거, 나도 모르는 마음은 아니거든.”

 

그 말에 요정은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좋아. 당신의 백성이 될게. 하지만 당신이 먼저 제안하고, 내가 그것에 수락한 것일 뿐이니 난 완전히 당신의 밑이 아니야. 알아 듣겠어?”

 

“절대 손해 볼 것 없는 대우를 해주겠다 약조하지. 그리고 우리가 호의를 가진 사람이 같은 한, 너는 멋대로 나에게서 벗어나지도 않을 거고. 좋아. 너의 이름을 말해라.”

 

요정은 잠시 고민했다. 어느 쪽의 이름도 애매했다. 그러면…… 단 하나뿐인, 새로이 지은 특별한 이름으로 살아가도 상관 없겠지. 그 어떤 정체성도 부정하지도, 어디에만 몰두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버밴시. 흡혈 요정 버번 시이자, 샤를리엔의 죽음만을 애도하는 밴시이자, 이가은만의 수호 요정님이야.”

 

밴시는 죽음을 알리는 요정이다. 그러나 이는 대대로 이어지는 집안을 지켜보고, 드물게도 새로 태어난 아이를 지켜 주는 수호령이 되어 주기도 한다. 본래도 단 한 사람만의 죽음만을 애도했으니, 그 사람을 이어받아 다시 태어난 자를 지켜볼 수도 있는 것이다.

 

“금비야. 버밴시를 치료해줘. 이제 이 사람은 가은이를 해치지 않을 거야.”

 

“정말이지 언니야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다. 알았다. 나오나! 시간 되돌리기의 요술! 깹!”

 

금비의 시간 요술이 버밴시에게 직격하고, 치돈귀에게 뺑소니 당해 만신창이가 된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너도 정말 착한 인간이구나. 파르켈이 희망을 가질 만 했어.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이제 가은이를 절대 해치지 않아.”

 

버밴시가 이안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충성이니 신하이니, 그런 것과는 상관 없는 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뱀파이어의 왕이시여, 계약을 받들겠나이다.”

 

“그래 버밴시. 그대에게 나의 피를 주겠다. 그대는 그 피를 받고, 내게 충성을 약조하라.”

 

이안이 제 손톱으로 손바닥을 그어 피를 냈고, 버밴시의 입을 향해 흘려주었다. 제 입으로 흘러가는 피를 양손으로 받치고, 입을 막은 뒤 그대로 받아 삼켰다. 왕족의 피라 그런지 그 안에 든 굉장한 힘과 함께 맺은 계약 탓인지 이전과 좀 다른 것이 자신에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새로운 힘, 새로운 삶.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관계가 있다.

 

“5백년 전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해도 되겠어? ……너에게.”

 

몸을 완전히 회복한 버밴시는 일어나 가은 앞에 서서 말했고, 허락을 구하기 위해 이안을 향해 몸을 틀었다.

 

“가은이의 의사에 따를게.”

 

“해도 돼요. 버밴시.”

 

버밴시는 허리를 숙여 가은의 이마에 톡, 하고 입을 맞췄다.

 

“사랑해, 가은아.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이제부터, 앞으로 반드시 내가 너를 지켜줄게.”

 

샤를리엔에게 하지 않았던, 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그 말을, 살아있는 너에게, 앞으로를, 미래를 살아갈 너에게,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던 애도와 마음의 일렁임을 인정하며 다짐을 건넸다. 다음부터는 내가 너에게 안녕, 이라고 먼저 다정하게 인사할 수 있도록. 샤를리엔이 내게 해주었듯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나니 어쩜 이렇게도 홀가분한지 몰랐다.

 

버밴시는 이안을 보았다. 뱀파이어 일족을 다스리는 왕이라면서 평범한 소년처럼 뾰로통 한 것이 재미있는 것인지 버밴시는 이안을 놀리듯이 쿡쿡 찔러댔다.

 

“어머, 질투하는 거야 전하? 응? 응응?”

 

“……태세 변환이 너무 빠르잖아. 언제는 잡아먹겠다더니만.”

 

“이미 시작부터 왕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 세계에 계속 남았던데다가, 종족까지 바꿔버린 변덕쟁이 요정에게 한결같은 걸 기대했어? 난 가은이만 행복하게, 지켜 줄 수만 있다면 이제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래도,”

 

이제 이가은에게는 여러 친구들이 함께한다. 모든 것을 희생 해서라도 함께 해줄, 파르켈이 바라던 그 사람. 소원은 이루어졌다. 버밴시는 마치 기사 님처럼, 이안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경례했다.

 

“전하께서 이가은이라는 이 인간을 사랑하는 한, 이 요정 버밴시,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래. 그대가 나의 명에 따르고 함께한다고 맹세하였으니, 나 뱀파이어의 왕 이안은 그대를 백성으로 인정하고, 너의 운명을 책임지어 함께 하겠다고 맹세하겠다.”

 

그들은 충성의 서약을 맺고, 그들이 사랑한 인간 이가은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 작별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고, 다시 만날 수 있기에 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할 수 있었다.

 

“안녕. 우린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물론이에요. 당신이 이렇게 날 찾아와 주었으니까.”

 

계속 이별을 미루고 싶었다. 애도하며 웅크리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던 고동이 빠르다고 느껴지고, 분명 바라던 것을 이루었음에도 가슴이 답답하다. 이 아이에게 하나 만이라도 더, 당장 줄 수 없는 것이어도 더 전해주고 싶고…….

 

“……저기, 약속 하나, 해줄 수 있어?”

 

그때 우리는 약속이란 걸 한 적 없었지만 당연한 듯, 어제 그랬으니 오늘도 당연히 만나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약속이란 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기다리며 서로를 잇고 싶었다.

 

“좋아요. 무슨 약속이요?”

 

상냥한 아이의 허락에 목을 다시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연다.

 

“응, 다시 만난다면 말이야…… 다시 만나면, 나와 같이 춤을 춰주겠어? 좋아하니까, 피는 빨지 않을 거야.”

 

유혹하지 않고, 흡혈하지 않고. 즐겁게 상대에게 발을 맞추면서.

 

“알았어요. 다음에 만난다면 같이 춤추도록 해요. 알았죠?”

 

“……응.”

 

“가자, 버밴시.”

 

그제야 모든 것이 후련해졌고, 이안은 더는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된다는 듯 버밴시를 재촉했다.

 

“본부대로 하지요, 전하. 잘 지내야 해, 가은아.”

 

“안녕, 나와 샤를리엔을 소중히 여겨 준 요정님.”

 

“가은아. 잘 있어.”

 

“네. 이안도 버밴시와 함께 잘 있어 주세요.”

 

세 퇴마사들은 두 인간과 두 비인간의 모습을 보며 작게 입을 모았다.

 

“……진짜 대단하네요. 인간이 아닌 자 둘의 호의를 얻어낸 가은 언니도 그렇고, 방금 전까지 싸웠던 상대를 알고자 하고 치료해달라고 하는 하리 언니까지.”

 

“그게 하리의 장점이지. 끝까지 끈기 있게, 두려워하지 않고, 편견을 가지지 않고 다가가고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는……. 우리와는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분명 하리는 강해.”

 

그런 하리의 강함에, 강림도 리온도 사라도 마음을 열고 생각을 바꾸고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이니까.

 

“맞아. 그리고 그건 가은이도 마찬가지야. 가은이가 버밴시를 감싸지 않았다면 이안이 데려가려 하지 않았을 거야. 두 사람의 강함이…… 버밴시를 구한 거야.”

 

어쨌든 버밴시의 구원은 구하리와 이가은. 두 소녀의 강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피키언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것처럼, 그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던 요정 역시 구해내었다. 몇 번이나 원귀와 사람들과 세계를 구해냈던 것처럼.

 

버밴시는, 인간에게 박해 받고 인간에게 구원 받은 요정은 이안의 뒤를 따라 드넓은 상공을 향해 훌쩍 뛰었다. 캄란 언덕에서 맞았던 바람과는 다른 조금의 더위와 습기를 조금 포함하고 있는 바람이 온 몸을 지나치고 부딪혔다. 이제야 눈물이 멎은 눈가는 짓물러져서 바람에 닿을 때마다 따갑고 가려웠지만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다.

 

먼 옛날, 왕의 부름을 거역하고 홀로 떠도는 요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요정은 사랑하는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때 하지 않았던 선택을 했다. 왕의 부름을 받고, 한 곳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요정은 달라진 제 모습에 반발하지 않았다. 그래, 그건 아마……

 

그 결심을 지탱해주는, 500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의미를 알게 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버밴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보고 싶다는 미련 따위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버밴시는 지난 500년 간 사랑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던 버번 시였고, 밴시였던 자신의 과거와도 작별을 고했다.

 

요정이 사랑하는 아이는 이제 봄을 지나 여름에도 살아있다. 살아간다. 그리고 여름 이후에도 살아가고, 또다시 봄이 오고 여름을 맞이하겠지.

 

버밴시는 이제 매해가 설레고 기대될 것 같았다. 매년 변함없이 찾아오는 눅눅하고 습한 이 공기조차도.

 

버밴시는 웃고 있었다. 실소도 아니고, 비웃음도 아닌, 예전 그때 그대로 모든 것을 즐기던 그 흡혈 요정의 웃음이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짓는 표정인데도 오래간만 같지 않았다. 마치 이때를 기다린 듯이. 아아, 파르켈. 이것이 희망을 이어가는 것이구나. 역시 나는 아직도 너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구나.

 

그러나 이해할 시간은 앞으로도 길게 쭉 남아있고, 동시에 자신은 이가은을 사랑할 것이고,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버밴시는 괜찮았다.

 

버밴시는 고향인 요정향과 자신의 유일한 왕이었던 자를 떠올리며 영원히 전해주지 못할, 그러나 생각만으로도 전해지길 바라는 말을 남겼다.

 

『오베론, 본래 나의 왕. 나는 당신을 떠나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살고 있어. 사실, 최근에 기쁜 일이 생겼어. 나를 바꿀 정도로 오랜 슬픔 끝에서 누구도 대체해주지 못하는 행복을 얻었어. 당신도 티타니아와 함께니까 이렇게 행복해 할까? 나와 같이?

 

하지만 난 이제 당신에게 이 말을 직접 전해 줄 수 없어. 나는 앞으로 인간들 사이에, 혹은 흡혈귀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되겠지. 예전처럼 나와 같은 요정들과 살아가지 못할 거야. 언제나 다른 종족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당신이 준 기회를 인간에게 줘버렸으니까 말이야. 이제 당신만이 나의 왕이 되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괜찮아. 당신이 좋아하던 가장 짧은 한여름 밤, 나는 500년을 기다려온 끝에 짧은 재회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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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틀사용, 배경은 IbispaintX 제공


 

♡MC 금비의♡

고스트 퀴즈

금비:핫한 귀신들과 함께하는 퀴즈쇼, 고스트 퀴즈! 그럼 오늘의 주인공은요,

버밴시:나는 이제 이가은만의 수호 요정님이니까. 애도하는 입회인, 버밴시입니다.

금비:파르켈이 오피키언을 만들고 예언을 입력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본 입회인 버밴시 씨. 본래 버번 시라는 흡혈 요정이었지만 샤를리엔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밴시로 변하게 되었는데요. 한국까지 와서 남자아이들을 습격하고 피를 빨고 가은이를 해치려해서 저하고 친구들이 상대하느라 많이 힘들었는데요, 버밴시 씨. 특기는요?

버밴시:밤에 돌아다니는 남자를 유혹해서 콱! 피를 빨아먹기!

금비:필살기는요?

버밴시:빠른 속도로 달려서 강력한 발차기 공격!

금비:자, 그럼 문제 주이소.

버밴시:문제 나가지. 나를 상대하느라 가은이의 친구들이 무척 힘들었는데,

내 약점은 뭘까? 1. 햇빛 2. 흐르는 물 3. 쇠!

금비:정답은 잠시 후에 공개됩니데이~

 

 

본래 피처럼 붉은 눈을 지녔으나, 수백 년 동안 샤를리엔의 죽음을 애도하는 눈물을 흘린 끝에 옅은 회색 눈으로 변했다.

하반신이 염소의 다리로 되어있다. 긴 드레스자락으로 가려져 있지만, 유심히 보면 발이 염소발굽으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반신이 염소라서 그런지 동공 역시 염소처럼 가로모양이다.

암녹색, 혹은 흰색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이름: 500년의 애도, 버밴시(Baobhan-shee) ※버번 시이며 단 한 사람만의 죽음을 애도하는 밴시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요정이다.

나이: 최소 500살 이상

성별: 여성

정체: 요정(버번 시>밴시>버밴시)

출신: 아일랜드> 독일

키/몸무게: 170cm(염소굽 포함) 55kg

좋아하는 것:샤를리엔, 이가은, 피, 드넓은 땅을 달리는 것, 이가은을 지켜주는 자

싫어하는 것:샤를리엔을 죽게 한 인간들, 쇠, 이가은을 해치려고 하는 자

주변 관계

샤를리엔-자신을 밴시로 만들어버린, 처음으로 사랑한 고결한 인간 소녀. 그러나 그때는 이를 깨닫지 못했다. 설령 깨달았다고 해도...

이가은-이번에야말로 지키기로 맹세한, 버밴시가 사랑하는 인간

파르켈-샤를리엔의 아버지. 처음에는 샤를리엔의 아버지라는 것 외엔 아무 관심 없었으나 샤를리엔의 죽음 이후 그가 오피키언을 차원의 틈에 숨기는 것을 도와줬으며, 그에게 호의를 갖게 되었다.

오베론-자신이 본래 따랐을 왕. 그를 따라 요정향으로 가자고 했지만 재미없어 도망쳐왔다

노움-땅의 요정, 광산의 요정. 파르켈이 이름을 지어준 4대 정령 중 하나. 버번 시에게 경고했다.

이안-자신이 따르기로 한 뱀파이어의 왕. 필요로 인해 맺은 계약 관계라서 수직적인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버밴시의 존재로 이안이 더 큰 힘을 얻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하리-자신의 과거를 보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인간

인간들-먹이일 뿐, 별다른 관심은 없다.

 

특기: 남자를 유혹해 춤추게 만들기

필살기: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강력한 발차기 날리기

특수 능력: 박쥐와 염소로 변신하는 능력, 안개를 만드는 능력

약점:쇠, 낮에도 활동 가능하지만 능력을 쓸 수 없는 평범한(그러나 눈과 다리는 염소인) 여자가 된다.

등장 에피소드: 배회하는 붉은 통곡, 애도하는 입회인  (고스트볼 더블X:여섯 개의 예언 이후 시간대)

 

금비:정답은! 3번, 쇠였습니다~

버밴시:피를 빤다고 뱀파이어랑 똑같이 봐주지 말아줄래?

후기

※편의를 위해 주인공의 지칭은 '버밴시'로 통일합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사랑받는 미소녀는 최고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가은에게 감기는건 필연인거죠 제가 인외인게 아니라 제최애 중에 인외에게 사랑받는 미소녀가 여럿있더라고요. 가은이도 친구집 가다가 뱀파이어 남친 픽업하고 이사가니까 지하에 악마가 있고 전생에는 호문쿨루스 오빠가 있는 그런 인외캣닢이었습니다

 

이 원고를 쓰게된 건 진단메이커 돌렸는데 이가은의 전생에 원수사이라고 나와서 충격받고 왜? 내가 샤를리엔의 원수가 될만한게 뭐있어 하고 뇌피셜 돌리다가 '샤를리엔을 충분히 지킬 수 있는데도 지키지 못하고 그걸 후회한 존재'로 이미지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원수라기보단 언니동생같은 느낌이지만… 진단의 한 단어가 낳은 4만 6천자. 파르켈과 사이도 나쁘지 않았고요. 원래는 되게 멸망을 위한 비즈니스적 관계고 애초에 관심도 없던(늙은 남자) 인간이었는데 그렇게 되었네요. 또 버밴시는 파르켈을 믿어서 그냥 떠났던거고.

 

한달동안 4만자 쓰다보니까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제가 안그래도 분량조절 못하고 분량 짐작도 못해서 언제끝나지 매일같이 징징거리면서 썼네요 마감 연장 안됐으면 어쩔 뻔했는지 좀 아찔합니다. 이와중에 수정할게 볼때마다 보여서 수정메일 몇개를 보냈는지… 주최님께는 언제나 죄송합니다 이 후기를 쓰는 순간까지요.

 

본편같은 팬픽을 목표로 썼는데 이걸 애니 본편으로 옮기면 2부작 될거같군요 어쩔수 없잖아요 예언에 나오는 모든 캐 한테 나름의 비중을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라 생각해주세요.

 

어쨌든 본편같은 느낌을 지향하면서 쓴거라 예언까지 보신 분들께는 좀 식상하고 다 예상이 갈법한 그런 스토리겠네요 버밴시의 타락 이유라던가… 타임라인에서도 제가 좀 스포일러를 했던가요;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드림으로 원고할줄 몰라서 그랬어요 원래는 안그래요

 

작중에서 명확하게 나오지 않거나 적히지 않은 설정 약간 풀면서 작중 내용에 대해 썰도 풀겠습니다.

 

1.가은이가 버밴시의 울음소리를 듣고 떠올린 건 언니가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들은 통곡소리였습니다. 기억해봤자 좋을 것이 없으니까 빨리 장면전환을 했는데 검토해주신 분이 전생기억 떠올린거냐고 묻더라고요.

 

2.어차피 버밴시 시점에서 일어나는 거라서 서술트릭 그런건 없고 작중 애들이 착각하고 있다~ 정도로만 이용된 버번 시 밴시 구분.

 

3.강림이 비중이 좀 적긴 적더라고요. 마감 기한 때문에 정신없어서 생각치도 못했고, 쓸건 다 써서 별 문제를 느끼진 못했네요. 강림이는 어머니를 전적으로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지만, 버밴시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의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해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할 수는 없어서 애매하게 말했지만. 사실 다들 적대적이라서 부각도 안됐습니다.

 

4.초기설정과 현설정이 바뀐것도 여럿 있는데 특히 고스트볼엔딩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하리가 버밴시의 과거를 보는 것도 그 고민의 연장일지도 모르겠네요(원귀 과거만 본거 깜빡하고 있었음)

 

5.이게 과연 여름이란 주제에 어울릴까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작중배경이 여름인건 맞는데.

 

6.과거파트 작중 시간대는 5월 즈음입니다. 꽃샘추위가 아직 남아있어서 봄이긴한데 추운 봄이죠. 그리고 샤를리엔은 얼마 지나지않아 죽었고. 대충 자간편에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죽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간편 이튿날 밤에 죽으면 너무하다 싶어서…

 

7.참고한 작품은 마법사의 신부(랴논시 에피소드), 본편(어떤 전개인지 파악하려고)이 있네요. 애들 이름 때문에 별빛초등학교 서술한 위키도 조금…

 

8.세나귀에 샤를리엔 에피 나온다길래 동공지진했는데 결과적으로 원고 고치는 사태는 안터져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파르켈이 버밴시를 호의적으로 보는 이유가 되기도 해서 좋네요.(에반이 죽은 이후 풀이 죽은 샤를리엔을 챙겨주는 누이같은 존재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근데 오빠 잃은 애가 언니 모르는 사이 죽는다는 미친 서사가 되더라고요.

 

9.버밴시와 파르켈의 공통점은 샤를리엔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와, 막을 능력이 있는데도 죽음을 막지 못한 자. 입니다.(인간 남자따위 얼마든 사냥 가능한 버밴시, 오피키언의 작동을 멈출 수 있는 파르켈)

 

10.버밴시의 '먹는다'란 말은 누가 샤를리엔을 죽이기 전에 자기가 죽게해야한다는 과격한 내꺼찜 그런겁니다. 어차피 죽는다면 자기 품에서 죽어야하고 자기가 죽여야했다는. 뭐 흡혈요정의 사랑방식이기도 하지만 그거보다도 샤를리엔의 죽음에 애통해하는 것이 더 컸습니다.

11. 짐작 가시겠지만 하리가 말할 때까지 '사랑'이란 말은 일절 나오지 않습니다. 의도된 거예요. 누구도, 본인조차도 버밴시의 행동원리가 사랑인건 몰랐으니까.

5월부터 신비아파트 보게된 생뉴비에 원고가 안 풀린다거나 끝나지 않는다거나 사라 캐해 이게 맞는건가 등등으로 힘겹긴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퇴고를 하면 응당 그래야죠! 제 원고를 봐주신 모두들 감사합니다!!

 

저작권 등의 문제로 올리지 못했지만, 추천하는 노래는

인피니트-No more

Kalafina-Fairy tale

Kalafina-만천

기타 신비아파트 오프닝(아 나 이 오프닝으로 버밴시 매드무비 만드는 상상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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