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은하수 아래 ; 여름을 나는 조금 특별한 연인의 이야기
by 세브
8월은 뜨거운 햇빛으로 인해, 해를 쬐는 것이 묘하게 아프다고 느끼는 시기였다. 7월에도 등교할 때마다 더위에 지쳤었는데, 8월에도 등교했더라면…. 더위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내심 지금은 방학 중이라 다행이라 느꼈다.
방학 동안 친구들과 노는 것도 즐거웠으나, 집에서 책을 읽거나 소소한 집안일을 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오전부터 계속 책을 읽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밖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선을 돌려 시계를 보자 오후 6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이미 해가 졌을 시간이었으나, 한여름의 8월은 아직 해가 지려면 많이 멀었다는 듯 밖은 덜 진 햇빛으로 인해 환했다.
"... 아직 밝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가은은 창문에 시선을 향한 채로 완전히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특별한 체질의 사람…. 아니, 빛을 쬐지 못하는 뱀파이어기에 항상 만날 수 있는 건 완전히 해가 진 저녁부터 새벽 뿐. 여름해가 길면 길 수록 만나는 시간 또한 줄어드니, 여름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항상 만나는 시간이 애매한 것이 단점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 한구석에서는 아주 작게, 작게 이안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닐 텐데, 그저 애꿎은 화풀이였다. 꾸물이며 갈 곳 없는 원망이 가슴에서 움직이는 듯 불쾌했다. 가은은 눈을 살짝 힘주어 감고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 그만두자."
사실상 오늘은 이안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도 아녔다. 더욱이 이안에게서 아무런 언질도 없었기에, 만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자꾸만 이안이 오지 않을지 기대하게 되는 자신이 싫었다. 자꾸만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희망을 가지는 것이, 결국 오지 않은 이안을 떠올리며 혼자 실망하는 것이, 아프고... 속상했다. 그럼에도….
그저 오늘은, 이상하게도 이안을 기다리게 되는 날이었다.
***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캄캄한 어둠이 하늘을 뒤덮었다. 가은은 책상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으며 싱숭생숭한 기분을 떨쳐내려 힘썼다. 하지만 여전히 우중충한 기분은 그대로였고, 책으로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 한 계획도 처참히 실패했다. 꽤나 마음에 드는 책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가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가은은 반사적으로 급하게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빛에 역광이 져 자세히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실루엣으로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실, 실루엣이 아니더라도,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가은은 이안임을 거진 확신했었다.
"이안…?"
빠른 걸음으로 창가로 다가가 조심히, 그러나 다급히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여름 바람이 방 안으로 휘몰아 가은의 머리칼이 공중에 휘날렸다. 창문틀에 한쪽 무릎을 꿇고 가은을 내려다보는 별빛 아래, 이안의 회색빛 눈동자가 유난히도 빛나 보였다. 순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의 모습에 잠시 넋 놓고 있자니 이안이 싱긋 웃으며 가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은아, 마중 나왔어."
"네…?"
마중이라니?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에 그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애초에 오늘은 만나기로 한 날도 아니었을 뿐더러…. 만나자는 편지조차 없었는 걸. 당최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보려 했으나, 표정은 숨길 수 없었는지 이안은 잠시 가은을 바라보고는 뒤늦게 당황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너무 갑작스럽게 와버렸나? 사실은 오늘은 나도 몰래 나온 거라…."
"....."
"오늘만큼은 꼭 너랑 함께 있고 싶어서…. 연락도 미리 못했네…."
"아…!"
이안이 멋쩍은 듯 웃으며 뒷말을 작게 흐렸다. 동시에 가은에게 내민 손을 거두려 하자,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이안의 손을 붙잡았다. 갑작스럽게 맞잡은 손에 놀란 듯, 이안이 살짝 벙찐 표정으로 가은을 바라보았다. 아, 이 상황을 어떻게 무마해야 할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라 화끈거렸다.
"... 싫지 않았어요."
"....."
도저히 이안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 시선을 내리깐 채로 웅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정말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그곳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안은 잠시 입을 다무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손을 꼬옥 맞잡아주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심장이 크게 뛰었다. 심장박동이 너무 크게 뛰어서 머리가 쿵쿵 울렸다. 맞잡은 손에서 이 박동이 전해질까 생각하니 심장이 더 크게 뛰는 기분이었다.
"가은아."
"... 네?"
"우리 나가자."
평소였다면 가은의 의사를 물었을 이안이 오늘은 나가자 라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내놓았다. 가은은 수줍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순간, 이안이 가은과 맞잡은 손을 부드럽게 당겨 가뿐히 그녀를 안아 들었다. 포옥, 하고 안기자 익숙한, 그러나 어딘가 낯선 이안의 체향이 코끝에 화악 와닿았다.
"어딜…. 가려는 거에요…?"
"비밀. 꽉 잡아."
옅게 웃으며 빠르게 밖으로 날아든 이안으로 인해, 바람이 세게 불어 가은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곧 천천히 눈을 뜨자, 익숙한 마을의 풍경을 빠르게 구경할 수 있었다. 조금 후끈한 여름 공기가 빠르게 달리는 이안의 속도로 인해, 시원하게 느껴졌다. 가로등과 건물들의 환한 불빛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 풍경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아래에서 비스듬하게 올려다본 그의 얼굴이 가까워서일까. 평소의 이안이 맞는데도, 어딘가 달라 보였다. 못 본 새 더 큰 걸까? 그렇다기엔…. 그는 뱀파이어니까. 기분 탓이겠지. 빠르게 달려서인가,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한쪽 눈도 달리는 반동으로, 머리카락이 흩날려 언뜻 보이는 듯했다. 그 모습에 다시금 심장이 쿵쾅거리며 머리가 울리는 듯했다.
맞닿지 않은 시선임에도,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였다.
***
얼마 안 있어 목적지에 도착한 듯, 이안이 가은을 천천히 내려주었다. 익숙한 풍경이 가은의 눈에 띄었다. 마을 뒷산의 절벽이었다. 오래 전, 처음 이안을 만나 함께 있었을 때가 자연스레 떠올라 기분이 묘했다. 뒷산은 꽤 높았기에, 절벽에 가까이 가지 않았음에도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긴…."
"여기 앉아볼래?"
이안은 싱긋 웃으며 절벽 앞에 세워진 벤치를 가리켰다. 이질적인 벤치의 자리에 가은은 가만히 절벽 앞에 세워진 벤치와 원래 벤치가 있었어야 할 자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원래 저 자리가 아니었을 텐데…. 이안이 옮긴 걸까. 어떻게 옮긴 걸까. 벤치 째로 들어서 옮긴 걸까? 다소 실없는 생각을 하며, 가은은 조심히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가은이 너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었어."
"별…?"
별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가벼운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였다. 물론 이안의 성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유가 있어 이곳으로 데려와 주었을 것이라. 이안은 상냥하니까. 가은을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혹시 칠월칠석의 이야기를 알아?"
"아…. 견우와 직녀 이야기 말인가요? 그 이야기라면 알아요."
"그래?"
대답을 들은 이안이 활짝 웃었다.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는 듯,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떠 가은의 옆에 살포시 앉아, 밤하늘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 이안이 시선을 하늘로 둔 채 입을 열었다.
"오늘이 칠석인 것도 알아?"
"네…?"
보통 칠월칠석 하면 7월 7일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8월이었다. 7월 7일을 한참 넘어간 시기인데…. 뱀파이어니까 인간의 시간을 세는 개념이 다른 걸까. 이안의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그저 고개를 갸웃였다.
"하지만 이안. 칠석이라면 7월 7일이 아닌가요?"
"아, 일본에서는 양력으로 7월 7일이 칠석이지만, 한국에서는 음력이라 날짜상 오늘이야."
"아…."
이안이 이렇게나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던가? 아니, 오랫동안 살아온 뱀파이어기에 이런 지식엔 해박한 걸지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작게 탄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지식이 흥미롭기도 하고, 이안의 새로운 면이 어딘가 설레어 작게 미소를 띄웠다.
"이안은 참 대단해요."
"아, 아냐…. 이런 것쯤이야…."
가은의 칭찬에 이안은 쑥스러운 듯 작게 얼굴을 붉히며 헤헤 웃었다. 평소에는 보기 드문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가은 또한 싱긋 웃으며 이안을 바라보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어느새 분이기가 화기애애하게 바뀔 때쯤, 순간, 서로의 눈이 맞닿았다. 시선이 맞닿아,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을 응시했다. 그러나 곧 번뜩 정신이 들었는지 가은이 먼저 그 시선을 피해버렸다. 뒤늦게 이안 또한 시선을 돌렸다.
"... 별이 참 예쁘네요."
"그러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잠히 별을 보기를 수 분. 점점 길어지는 침묵에 어색해 겨우 말이라도 붙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색한 기류는 숨길 수 없었다. 긴 침묵에 하늘을 보니 별들이 수놓아진 듯 하늘에서 반짝였다. 집에서라면 드문드문 보였을 별들이 어두컴컴한 주변 덕에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순간, 가은의 눈이 빛나듯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침묵을 깨고 가은이 입을 열었다.
"이안 저건…."
저 멀리 별들 사이로 은하수가 작게 비추었다. 선명하고 크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은하수였다. 사진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은하수를 직접 보니, 가은은 은하수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황홀한 풍경에 잔잔하게 뛰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떠오르지 않았다.
"......."
"......."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은하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안은 은하수를 보는 것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이안은 가은의 눈치를 슬쩍 보며 계속 그녀의 옆모습을 짧게 곁눈질하며 여러 번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저 은하수를 만든 것도 이안이었다. 가은을 위한 이벤트였는데. 넋을 놓고 은하수만 바라보는 그녀를 보니 다행히 작전이 성공한 것 같지만…. 이 이후로는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바보 같게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무언갈 결심한 듯, 이안은 가은을 한 번 바라보고는 가은의 손을 조심히 깍지껴 잡았다. 시원한 체온이 가은의 손에 닿자, 저도 모르게 손을 움찔 떨었다. 그와 동시에 이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안은 어느새 시선을 돌려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이안을 바라보던 가은은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이안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꼭 잡았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체온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서로의 맥박 소리로. 두 사람은 확실하게 이어져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이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분명 전해지고 있으리라.
반짝이는 은하수 아래,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을 길게 응시하며 둘 다 그저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읽듯 계속 눈을 맞추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둘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서로의 이마를 맞대었다. 그리고 가은이 작게 읊조렸다. 이안 또한 생긋 웃으며 같은 말을 읊조렸다. 서로에게만 들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서로를 향한 가장 소중한 말을 건네며.
그렇게 두 사람의 감정은 오늘도 깊어져만 간다.
후기
안녕하세요 세브입니다!
항상 주류로 파던 이안가은으로 온라인 온리전에 참가하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이 글은 예전부터 썰로 묵혀둔 거였는데.. 이렇게 꺼내게 되네요ㅋㅋㅋㅋ
다른 곳에 안 쓰고 묵혀두길 잘했다고 다짐했습니다..
벌써 신비아파트를 판 지 어연 6년이 되어가네요..
제 연성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앗 그리고 신비아파트 온라인 온리전 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최 및 운영진분들 모두모두 사랑해요!!
